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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사람되기의 어려움-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2-05-10 20: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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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많지 않은 책 중에 ‘어른 되기의 어려움’이라는 게 있다. 그 영향은 아니지만 그 주제의 연장선에서 ‘사람 되기의 어려움’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 정치-경제만으로도 바쁜데 무슨 그런 한가한 생각을? 아니다. 이것은 정치-경제 이전의 주제다. 아니 과제다. 왜냐고? 세상에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 세상에 넘쳐나는 게 사람인데, 77억이나 있는데, 사람이 많지 않다니!

    여기서 우리는 저 아득한 고대의 아테네에서 디오게네스를 소환해본다. 그를 존경해 일부러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엇이든 다 들어줄 테니 소원을 말해보라는 그에게, 거기 서서 햇빛 가리지 말고 좀 비켜달라고 그게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한 무욕의 철학자였다. 그 디오게네스가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다. 벌건 대낮에 등불을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습니다(anthropon zeto)”라고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기행일까? 아니다. 왜? 물을 것도 없다.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2천 수백년 전 그리스의 현실일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사람이 드물다. ‘사람’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는 ‘사람 되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 중요한, 주제 중의 주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수년 전 한 외국계 글로벌 대기업의 사장님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귀한 기회라 이런 질문을 해봤다. “기업의 입장에서 대학에 주문하고 싶은 게 혹 없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장님의 답이 이랬다. “전공 교육,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본만 가르치면 됩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들은 어차피 현장에서는 낡아서 못씁니다. 회사에서 다시 가르쳐야 됩니다. 가르치면 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못하는 게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그건 학교에서 해야 됩니다. 그러니 대학에서는 먼저 사람을 만들어서 회사로 보내 주십시오.” 너무나 인상적인 말씀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교육관도 많이 달라졌다. 방향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일까? 사람을 만들어야 할 그 대학에서 조차 진정한 사람 되기에는 별로 들 관심이 없다. 문제다. 그 문제들 중의 하나로 짚이는 것이 있다. ‘지식과 사람의 괴리’다. 지식과 인성이 따로따로 노는 것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주변에 많다. 세상에 넘쳐 난다. 그러나 책의 바깥에서, 강의실 바깥에서, 그 사람 자신의 실제 삶에서 보면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의 지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각도 말도 행동도 거칠고 천박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런 경우일수록 지식을 과시하고 고집하고 또 그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서로 공치사를 남발한다.

    마치 ‘노동의 소외’처럼 ‘인간의 소외’라는 현상이 세상에는 만연해 있다. 그 연장선에 사람 되기의 핵심인 ‘겸손과 존중’의 실종이 있다.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행합일’이라는 걸 들어봤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자 양명 왕수인의 철학이었다. 그들이 역사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들 자신의 앎과 삶에 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앎이 즉 가치관이 삶에서 구현돼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궁극의 철학’이라고 강조해 왔던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의 경우는 특히 그러했다. ‘사람이 된’ 대표적인 경우, ‘사람 되기’의 모범 들이다. 그런 점에서 인류의 사표들이다.

    물론 착각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다 그들 같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이분들의 철학도 그저 한낱 지식일 뿐, 그 실제 삶은 이분들의 가르침과 한참 먼 인사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각광을 받는 지식인들을 보며 ‘사람 되기의 어려움’이라는 주제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바야흐로 그런, 인간 소실점의 시대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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