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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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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음으로 보는 세상- 강원석(시인·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 기사입력 : 2022-05-22 20: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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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봄, 뜻밖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어느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온 전화였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12주간 강좌를 맡아 주실 수 있을지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능력이 안 됩니다. 좋은 분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잠시 망설였지만,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쓰는 시의 대부분은 꽃이나 별, 노을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쓰는 시이다. 시각장애인분들께 이런 시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꽃잎에 긁혀도 상처는 남는다. 예쁜 말도 마음을 담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분들에게 내 시가 상처가 될까 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내의 말이 나를 흔들었다. “시를 쓰는 이유가 지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 초심을 짚는 말이었다. 다음 날 복지관에 전화를 걸어 강의를 맡겠다고 했다.

    몇 번의 수업 후, 서로에게 익숙해질 무렵 ‘행복’이라는 시를 수강생들에게 읽어 주었다. “꽃을 볼 수 있으니 좋구나/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또 좋구나//살아간다는 것/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면//너의 삶도 나의 삶도/꽃처럼/피고 또 피리라”

    조심스럽게 느낀 점을 물었다. 60대 중반의 여성분이 말씀하셨다. “시인님, 저는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비록 꽃을 볼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견뎠을까. 복받치는 감정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손으로 세상을 더듬고,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눈으로 보면 구름 덮인 하늘도 마음으로 보면 높고 푸른 하늘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산다.

    시각장애인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많은 깨우침을 얻는 시간이었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가끔은 작은 눈이 아닌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자.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강원석(시인·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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