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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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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연도’ 여성 상두꾼 장례풍습의 민속·사회적 가치- 김일태(시인)

  • 기사입력 : 2022-09-05 19: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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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살아가면서 치러야 하는 중요한 의식을 함축적으로 ‘관혼상제’라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은 장례이다. 장례는 육신을 떠나서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으로 가장 중요시한다. 이렇다 보니 전통적으로 복잡하고도 긴 여정의 장례절차와 방식은 예로부터 남자들이 주도했다. 그런데 진해 연도라는 작은 섬에 아낙네들이 상여를 메고 장례문화를 주도하는 특이한 풍습이 있었다. 집에서 발인제를 지내고 선창 부두까지 운구한 뒤 상여를 배에 싣고 연도 옆 공동묘지 솔섬까지 이동, 묫자리를 택해 땅을 파고 하관한 뒤 봉분을 짓고 축을 쌓는 일까지 모두 연도의 여인들이 해낸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방송사의 자료에 따르면, 이 풍습은 일제 말기인 1943년에 처음 시작해 50~60년대를 거쳐 산업화가 활발하던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이렇게 별나고도 기구한 풍습이 출현한 배경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그것은 암울했던 시기, 여성으로 태어난 역사적인 운명과 가난하고 외로운 섬으로 시집왔다는 팔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도 여성 상두꾼 풍습은 길흉사가 있을 때 상부상조하고 함께 일하고 즐기며 삶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가난한 섬 지역 아녀자들이 합심해 이뤄낸 문화 자산이다. 그러나 이의 가치는 단순히 남성 중심의 장례를 여성들의 힘으로 해냈다는 특이성에 있지만은 않다.

    먼저 중요한 것은 여성 상두꾼이 꾸려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다. ‘국민 징용령’을 발동해 강제 노역과 징병이 시작된 일제 말기 젊은 남성들은 모조리 끌려가고 섬에 남은 이들이라고는 육칠십이 넘은 늙은이들과 아녀자들뿐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 장례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망자의 시신이 방 안에서 썩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못해 섬 아낙네들이 치마를 걷어붙이고 초상을 치러야 했던 것이 바로 역사 자연환경적 배경이다.

    두 번째는 당시만 해도 유교적인 도덕적 관념이 지배하던 시기인데 남성 중심적 권위 의식의 상징인 장례를 여성들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해방 후 살아남은 남자들이 차츰 고향 섬을 찾아 들어왔으나 이미 익숙해진 여성 상두꾼들은 남자들 대신 계속 장례를 맡았다. 이는 여성들이 마을의 중요한 일에도 참여하고 결정하는데 남성들과 동등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단순히 전통민속의 영역을 떠나 남성 가부장 중심사회에 도전해 여성의 능력을 과시하며 마을공동체의 주체로서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사회학적으로 크게 조명받아야 할 중요한 시대적 가치이다.

    섬 여인들은 억센 환경에서 살아가는 만큼 대체로 내륙지방의 여성들보다 생활력도 강하고 낙천적이다. 자연적인 환경이 섬 여인들의 기질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장례 일을 연도 여성들은 숙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힘찬 ‘가래소리’로 봉분을 짓고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으로 무덤 주위에서 ‘쾌지나칭칭나네’를 부르며 회포를 풀다 연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진해 웅천에서 뱃길로 30분쯤 거리에 떨어져 있던 작고 깨끗한 섬 연도는 얼마 전 해안 개발사업으로 육지화돼 지도에서 사라지고 연도 상엿소리 또한 장례문화의 변화와 함께 묻혀가고 있다. 하지만 전통문화 자산은 사라질 위기 때문에 더더욱 보존 전승돼야 하는 속성을 지닌다. 진해 연도 여성 상두꾼 풍습은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시기에 낙천적이고도 진취적인 기질로 합심해 가난과 남성 중심적 사회 규범을 넘어 마을공동체를 주도적으로 이끈 섬 아낙네들의 곡진 삶과 지혜, 용기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특이한 문화의 원형 정립과 문화 사회적 가치의 보존 전승을 위해 진해문화원이 주도하는 가운데 서른다섯 명의 보존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의 열정과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일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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