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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무가지보(無價之寶)- 양영석(문화체육부 선임기자)

  • 기사입력 : 2022-09-06 19: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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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0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보 180호 세한도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기증한 손창근 옹을 청와대로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세한도에 대해 우리나라 국보 중 서화류 가운데서는 최고의 국보라며 무가지보(無價之寶·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보물)라고 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살이 4년째인 1844년, 그의 나이 59세 때 제자이자 역관인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으로 조선 최고의 문인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인화는 미술적 기교보다는 사의(寫意), 즉 작가의 의도, 그리게 된 동기를 중요시 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추사는 가슴 속에 수많은 책을 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세한도는 그림(세로 23㎝, 가로 69, 2㎝)과 발문으로 이뤄져 있다.

    대충 윤곽만 그려진 초라한 집 한 채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거칠게 그려진 노송 한그루와 측백나무가 있고, 왼쪽에는 측백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스산하고 적막한 겨울의 분위기가 당시 추사의 외롭고 쓸쓸한 처지를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춥고 황량한 한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물기가 없는 마른 붓에 짙은 먹을 묻혀 빗질하듯 그린 필법이 돋보인다. 이를 초묵법이라 하는데 오로지 붓질의 속도로 짙하고 옅은 농담을 표현하기에 아무나 구사할 수 없으며, 추사도 각고의 노력 끝에 터득했다고 전해진다.

    오른쪽 윗부분에는 ‘세한도’라는 화제(畵題)와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는 글자, 낙관이 전체 구도에 안정감을 준다.

    발문에는 추사가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준 사유를 상세히 적고 있다. 요약하면 추사 본인이 권력을 잃고 초라한 처지가 됐는데도 매년 청나라에서 진귀한 책을 구해주는 등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제지간의 의리를 지킨 이상적에게 감복했다는 내용이다.

    이 그림을 전해받고 감격에 겨운 이상적은 그해 가을 동지사 이정응 일행을 수행해 연경(베이징)에 갈 때 가져갔다. 이듬해 중국인 벗인 오찬의 초대연에서 참석한 청나라 문인·학자 16인으로부터 제영(題詠·감상평)을 받았다.

    해방 이후 위당 정인보, 이시영 초대 부통령, 오세창 언론인·서예가 등 4인의 댓글이 덧붙여져 길이가 14.7m에 달하는 두루마리 형태가 됐다.

    작품성도 뛰어나지만 당대 최고 문인들의 보증서 같은 감상평들이 세한도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려진 뒤 180여년 동안 주인이 10번이나 바뀌고,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환수되기까지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세한은 뜻은 논어 ‘자한’편의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에서 따왔다. 선비가 마땅히 지녀야 할 지조와 의리를 강조한 문구다.

    하지만 작금의 세태는 어떠한가. 추사 생전에도 그러했겠지만 권세와 이익을 좇아 구름처럼 흩어졌다 모이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참된 도리가 점점 소홀해지고 있는 오늘날,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을 품은 세한도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양영석(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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