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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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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47) 종라백대(綜羅百代)

-주자(朱子)의 학문은 모든 시대의 것을 종합하여 망라하였다.

  • 기사입력 : 2022-09-20 08: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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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 16일 조선일보의 〈박정훈칼럼〉에 ‘주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주자가 지금 우리나라를 죽이고 살릴 만큼 영향력이 있는 현실도 아니고, 일부 좌파 정치인들이 중국을 높이는 것은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박씨처럼 주자를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1999년 김경일이라는 교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내었을 때 성균관 등에서 즉각 성토대회를 열고 법적 대응을 했다.

    지금 주자를 폄훼하는 글을 썼는데도, 성균관 등 유림단체 등에서 반박하는 어떤 움직임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박씨가 쓴 주자에 관한 내용은 실상과 크게 다르다. 박씨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급하는 주자의 사람됨과 학문은 주자의 실상과 다르다. 주자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주자학을 곧 성리학(性理學)으로 알고 있는데, 성리학은 주자학의 극히 한 분야에 불과하다. 양명학(陽明學)을 주자학과 완전히 대립적 학문으로 보는데, 양명학은 주자학을 약간 개선한 학문이다.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마당에 왕양명(王陽明)이 주자를 찬양하여 지은 비석이 서 있다.

    주자는 학자, 문학가, 사상가, 교육자, 행정가다. 단순히 공리공론만 일삼고 형식만 추구한 학자가 아니고, 역대의 모든 학문을 종합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였다.

    주자는 통치체제에 순응하며 기득권을 누린 보수주의자가 아니고, 개혁적인 사고를 가지고 통치체제를 비판한 실천적 학자였다.

    19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52년 동안 관리의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관직에 있은 것은 8년 정도였고, 중앙 조정에서 근무한 것은 42일에 불과했다. 지방관으로 나간 것은 백성을 구제하고 학교를 일으켜 교육을 펼치는 등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흉년에 백성들을 구제할 사창(社倉) 제도를 만들고, 토지를 정확하게 측량하여 세금과 부역을 감면해 주고, 토호들의 백성 착취를 막고, 농사기술을 개량하고, 억울한 죄수가 없도록 공정하게 재판하는 등 실학적인 능력이 아주 탁월하였다.

    마지막 벼슬이 환장각(煥章閣) 대제(待制) 겸 시강(侍講)이었는데, 황제에게 강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직책이었다. 황제를 바르게 인도하게 위해 심하게 나무랐기 때문에 얼마 뒤 반대파들이 반역으로 몰아 추방하였고, 그의 학문을 위학(僞學 : 가짜 학문)으로 몰아 죽이려고까지 했다.

    아무리 좋은 학문과 사상이라도 약간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자 학문의 좋은 점을 퇴계선생이 잘 받아들여 수준 높은 우리의 학문과 사상을 만들어 내는 데 잘 활용하였다.

    청나라 학자 전조망(全祖望)은 〈송원학안(宋元學案)〉에서 주자의 학문을 평가하여 ‘넓고 큰데 이르렀고, 정밀하고 섬세함을 다했고, 모든 시대의 학문을 종합적으로 총괄했다.[致廣大,盡精微,綜羅百代]’라고 극찬했다.

    * 綜 : 모을 종 * 羅 : 벌릴, 모을 라 * 百 : 일백 백 * 代 : 시대 대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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