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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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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윤이상과 K클래식-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 기사입력 : 2022-10-03 19: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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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17일은 작곡가 윤이상의 생일이다. 독일의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집 ‘상처받은 용’은 그의 어머니가 꾼 태몽에 기반한다. 그의 일생은 마치 태몽처럼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평가와 함께 조국의 정권과 불화한 상처를 무덤까지 가져가야만 했다. 한국에서의 윤이상은 음악가 이전에 계몽운동가였다. 해방공간에서 그는 어린이들이 부를 동요를 지었고 많은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으며 우리 어법에 맞는 가곡을 창작했다. 생전에 현존하는 20세기 5대 작곡가라는 평가를 들었던 그의 올 생일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어린이들이 새로운 동요를 발표하는 ‘윤이상동요제’를 개최해 축하를 겸했다. 그가 모국어와 우리 가락을 보급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들과 뜻을 모아 동분서주했던 것이 70여 년 전의 일이었으니, 족히 한 사람의 수명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세계 최고의 인적 자산을 갖춘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섰다. 근래에 와서는 영화, 드라마, 대중음악, 스포츠, 클래식 음악 등 장르에 관계없이 K문화콘텐츠의 위력을 유감없이 떨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의 음악 전문기자 리처드 모리슨은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클래식 음악에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은 단연 한국의 차지일 것이다”라는 내용을 실었다. 한편, 지난 2012년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로 K클래식의 이상 징후를 예견했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티에리 로로 감독은 최근에 아예 ‘K클래식 제너레이션’이라는 후속 다큐를 통해 한국 클래식 음악의 성과를 입체적으로 다뤘다.

    윤이상이 고단했던 조국의 현실과 어렵게 이룬 자신의 음악적 성취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면, 정명훈과 조수미는 속도감 있게 개발도상국 대한민국과 보폭을 맞추며 성장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K클래식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 하나의 모범적 문화로 읽힘과 동시에 한 세대의 에너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로 감독은 지난 1년 동안 몬트리올·부조니·퀸 엘리자베스·반 클라이번 등 세계 4대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이 모두 한국인이며 심지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실제 지난해 몬트리올 콩쿠르(피아니스트 김수연), 부조니 콩쿠르(박재홍),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임윤찬)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첼로 최하영) 우승자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원) 출신이다.

    올초 타계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집념이 만들어 낸 한예종은 명실상부 K클래식의 산실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통영시는 작년 한예종 영재원의 경남캠퍼스를 정식 개관해 K클래식의 뉴 제너레이션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아울러 이달 30일부터 약 열흘간 펼쳐질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도 예열을 마친 상태다.

    반 클라이번콩쿠르 우승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이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라는 사실에 이번 콩쿠르는 첼로 부문으로 치러짐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회의 예선 참가자 수를 2배 이상 훌쩍 뛰어넘어 흥행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결선 티켓도 예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판매되고 있다.

    예전엔 한국에서 개최되는 콩쿠르에 한국인이 많이 지원하거나 상위 입상을 하면 국내용 콩쿠르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 K클래식의 위용 덕분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차붐을 일으켰던 유럽 축구계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그라운드를 누비듯이, 윤이상이 활약했던 베를린에는 지금 한국의 유명 음악가들이 대거 살고 있다. 선생이 다져 놓은 토양에 K클래식의 꽃이 활짝 펴있다. 기예만 뽐내던 우리 음악인들이 한국인 최초 같은 촌스러운 수식어를 떼어 내고 음악적 본능으로 진검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민(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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