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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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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나는 매주 ‘기후위기’ 피켓을 든다”
어릴 적 추억 가득했던 마산 가포해수욕장
오염으로 폐쇄됐단 소식 듣고 환경에 관심

  • 기사입력 : 2022-12-07 20: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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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청 인근의 한 카페, 남색 베레모를 쓴 신사가 들어선다. 지난 4월, 그와 처음 독대했을 때도 보였던 베레모다. 달라진 것은 무거운 옷차림과 그와 달리 가벼워진 손이다. 이전의 그는 까만 노트북 가방을 쥔 채 카페로 들어왔다. 당시 그가 펼친 노트북에는 300페이지 분량이 조금 넘는 피피티 자료가 방대하게 들어 있었다. 모두 기후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뜨거워지는 지구, 끊임없는 재난과 행동하는 사람들. 그는 한 시간여 동안 그것에 대해 열변했다.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그와 만나 개인교습을 받은 것은 비단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환경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시간을 들여 기후위기를 알리는 열정을 가진 사람.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70)는 경남에서 누구보다 ‘행동하는 사람’이다.

    박 대표는 마산, 서울 종로와 휘경동 기업은행 지점장을 맡았던 성공한 은행원이면서도 ‘돈의 가치’와는 동떨어져 보이는 환경을 사랑했다. 환경운동연합의 일원으로 마창진 지역의 환경 현안을 다루다 후쿠시마 원전 사건 이후로는 탈핵운동을 이어가 고리1호기를 폐쇄하는데 기여했다. 본격적인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전할 메시지가 많다.

    박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제25차 금요 기후위기집회 준비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제25차 금요 기후위기집회 준비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재판장에 서면서 알려야 했던 것들= 지난달 4일, 박 대표는 창원지방법원의 피고석에 앉았다. ‘경범죄 처벌법 혐의’로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창원 마산합포구에 있는 진북터널과 진전터널 등에 스프레이로 ‘기후위기’라고 적어 부산지방국토관리청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는 서면심리로 벌금과 과태료를 부과 받는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박 대표는 검찰 조서를 이같이 썼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려서 대처해야 하지만 정부가 나서지 않아 내가 대신 나섰다. 우리에게 주어진 ‘탄소예산’은 6년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생명이 걸린 일이며 그렇기에 이런 방법으로 기후위기를 알린 것은 정당방위다. 불이 났으면 ‘불이야’ 외쳐서 함께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강지웅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단독 부장판사는 박 대표에게 벌금 10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15만원보다는 더 낮은 액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벌금을 선고하는 판결문을 낭독하고 후에 이렇게 덧붙였다. “판결과 별개로 피고인의 정신은 재판부에서도 존중하고 있다.”

    박 대표는 벌금 10만원을 선고받고 다음날 바로 항소장을 냈다. 자신을 존중하는 재판부에게는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기후위기를 알리는 행위가 범죄가 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항소이유서에 비슷하게 썼습니다. 이번 기회로 고등법원 판사가 기후위기를 알게 될 것이고 만약 또 유죄가 선고된다면 대법원까지 갈 텐데 대법원 판사에게도 알릴 수 있는 기회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방국토관리청에게 고소를 당한 이후 박 대표는 최근 기후위기를 알릴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빨간 스프레이를 뿌리는 대신 도로 옆 시멘트벽에 먼지를 지워 그림을 그리는 ‘리버스 그레비티’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적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창원 곳곳을 다니면 보이는 ‘기후위기’ 현수막이나 스티커는 대부분 박 대표의 작품이다. 혹자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질문한다. 그는 그저 모두가 살 수 있는 형태로 지구를 온전히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제25차 금요 기후집회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제25차 금요 기후집회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내 아름다운 지구를 아이들에게=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중, 용마고(옛 마산상고)를 나온 박 대표는 어린 시절 매일 가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더운 날에는 수영을 하다가 해삼을 잡아먹기도 하고, 겨울에는 갯벌로 가서 게를 잡아 튀겨먹기도 했다. 그것이 마산 주민들의 삶이었다. 기업은행에 입사하고 서울에 정착한 이후 언젠가 갯벌도 매립되고 마산만이 오염돼 가포해수욕장이 폐쇄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첫 계기였다.

    박 대표는 이후 서울에서 공해추방연합(현 환경운동연합)을 방문하고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환경 현안들에 앞서왔다. 그렇게 40년을 환경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후회도 남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탄소저감’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죄책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나서기 시작했다. 기업과 지자체에 탄소저감, 친환경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활동에 전념했다. 2020년부터 시민들에게 기후위기를 인식시키기 위해 ‘기후위기’ 스티커와 현수막을 붙여오고 있다. 세계에서 열리는 기후위기 금요집회에 동참하기 위해 ‘기후해방군’을 차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창원 정우상가 광장에서 기후위기 집회를 연다. 집회는 벌써 25차에 접어들었다.

    “말은 안 해도 기후위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느꼈어요. 지나가다가 음료수를 주기도 하고, 우리와 인연이 없던 한 대학생도 이 집회에 함께 동참하기 시작했죠.”

    겨울에 접어들어 기후위기 피켓을 든 손가락이 빨갛게 얼어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집회를 스쳐가는 100명의 사람 중 1명이라도 기후위기를 인식했으면 한다. 박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제25차 금요 기후집회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정우상가 앞에서 열린 제25차 금요 기후집회에서 상복 차림으로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김승권 기자/

    ◇가족을 사랑한다면 바깥으로 나와야= 2010년 폭염과 가뭄으로 러시아의 밀 생산량이 줄자 곡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세계적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했다. 러시아 밀을 주로 수입하는 시리아에서도 밀가루 가격이 폭등하자 폭동이 일어났고 반정부 봉기로 이어져 결국은 내전으로 갔다. 난민 600만 명이 발생했다. 난민을 받을 수 없다던 영국의 반대 여론은 영국 유럽연합 탈퇴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그 위기가 아시아로도 이어진다고 얘기한다. 벼 재배 국가의 기후가 변하면 극심한 식량난이 생길 것이고 이가 러시아 사례와 같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외국인 혐오, 정치·종교적 긴장 등의 요소와 결합하면 폭력사태나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오로지 박 대표만의 주장이 아니다. 기후 전문가들이 예견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박 대표가 기후위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시민에게 ‘인식’시키고 ‘행동’을 함께 촉구하기 위해서다. 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은 기업과 국가를 변화시킨다. 그는 특히 기성세대와 은퇴자들이 나서줄 것을 요구한다.

    “교사나 공무원 등 소득이 보장되면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은퇴 이후 나서주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귀중한 인적자산들이거든요. 자식과 손주를 사랑한다면 사실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요. 우리들은 탄소를 마음껏 써왔지만 이 때문에 이후 세대들은 힘든 미래를 바라보고 있거든요. 가족을 사랑한다면 우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와 행동해야 합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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