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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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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장애 뛰어넘고 달리는 이경화 핸드사이클 선수

‘쌩~쌩’ 두 팔로 달린다… ‘씽~씽’ 새 인생 찾았다
두 아들 홀로 키우며 살던 억척 주부
소아마비 딛고 2018년 ‘핸드사이클’ 입문

  • 기사입력 : 2023-01-04 20: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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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달려 보지 못했잖아요? 사이클을 처음 탔을 때 바람을 스치며 달리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죠. 그 기분 평생 못 잊죠.”

    핸드사이클 선수 이경화(51·통영시 광도면)씨는 사이클 페달을 처음 손에 쥔 2018년 여름을 못 잊는다고 했다. 그녀 나이 46살 때였다.

    핸드사이클은 하반신 장애인이 누워서 탈 수 있도록 고안된 자전거다. 두 손으로 페달을 쥐고 3개의 바퀴를 돌려 달린다. 내리막에서는 시속 8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지구력과 순발력이 모두 필요한 종목이다. 80㎞ 장거리 대회는 3시간 가까이 두 팔로 페달을 돌려야 결승점에 골인할 수 있다.

    인생의 목표가 ‘도전’인 이경화 핸드사이클 선수가 출발을 준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인생의 목표가 ‘도전’인 이경화 핸드사이클 선수가 출발을 준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인 이경화씨는 핸드사이클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억척 주부로 살아왔다.

    “돌아보면 2006년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네요. 아이들이 크면서 숨 돌릴 여유가 조금씩 생기더라고요.”

    이씨가 핸드사이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40대 초반 평소 취미로 즐기던 휠체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다.

    “휠체어마라톤 대회와 함께 핸드사이클 대회도 열렸는데 선수들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한눈에 반해 버렸죠.”

    대회를 마친 뒤에도 쭉 핸드사이클을 마음에 두고 있던 이씨는 2017년 큰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 엄마의 꿈을 얘기했다.

    “두 아들 앉혀놓고 ‘엄마가 50살 되기 전에 꼭 도전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떡할까?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도와줄 수 있니?’ 물었죠. 흔쾌히 ‘엄마 해’ 그러더라고요. 곧바로 직장을 그만뒀죠.(웃음)”

    아이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주변을 수소문해서 핸드사이클 입문을 준비했다. 당시 일하던 여객선 매표소 일을 그만 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350만원짜리 훈련용 사이클을 중고로 구입했다.

    2000~3000만원에 달하는 선수용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이클이었다. 이 씨는 ‘쇳덩이 사이클’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쇳덩이’를 타지만 진짜 열심히 했어요. 너무 하고 싶던 거라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했어요.”

    핸드사이클에 입문한 이씨는 악으로 깡으로 페달을 돌렸다.

    “고개를 들고 누워서 타는데 한 번은 뒤통수에 혹이 생겼더라고요. 너무 이를 악물어서 치아가 3개나 빠지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행복하더라구요. 한 번은 페달 잡은 손에 생긴 물집 사진을 찍은 적도 있어요. 물집이 너무 감사해서.”

    이경화씨의 이런 악바리 근성은 곧 성적으로 이어졌다.

    4~5개월의 준비를 마치고 2018년 10월 처음 참가한 전국 장애인사이클 도로 독주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국제 휠체어마라톤대회 4위, 거제시장배 휠체어 마라톤대회 5㎞ 1위를 차지했다. 전국장애인체전에서는 20㎞ 독주 동메달, 60㎞ 도로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씨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잡았다.

    “출전 종목은 다르지만 핸드사이클 국내 1인자 이도연 선수가 저의 롤모델이었어요. 리우 패럴림픽 은메달리스트거든요. 패럴림픽 무대는 꼭 밟아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비용이 문제였다. 패럴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국제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랭킹을 받아야 하지만 비행기 값 등 500만원에 달하는 출전 경비를 마련할 수 없었다.

    “저의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통영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시민 모금을 통해 출전 경비를 마련해 줘 캐나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어요. 핸드사이클을 시작하면서 감사한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난 것 같아요.”

    그렇게 2019년 8월 참가한 캐나다 베코모(Baie-comeau) 장애인도로월드컵 대회에서 60㎞ 이하 독주 5위, 로드 4위를 차지해 월드컵 랭킹 10위가 되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2021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참가했지만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당시 49살이던 그녀가 20대 중국 선수, 체력이 월등히 앞서는 서구 선수들과 경쟁해 메달을 따기는 무리였다.

    또, 미흡한 코스 운영 능력 등 국제대회 경험 부족에서 오는 한계도 절감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외국 도로는 급커브 코스가 많더라고요. 대비를 못해 코너를 돌다 넘어졌어요. 코너를 어떻게 돌 건지, 어디쯤에서 추월할지, 막판 스파트는 언제부터 해야 하는지 등 코스 답사부터 부족한 점이 많았죠. 마지막엔 눈앞에 다른 선수가 뻔히 보이는데 따라잡지 못했어요. 얼마나 분하던지.”

    이경화씨는 현재 재활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도쿄 패럴림픽 대회 이후 회전근개파열로 어깨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2022년엔 재활운동을 하면서 출전한 국내 3개 대회에서 모두 3위에 그쳤다. 실망도 컸지만 재활을 잘 마쳐서 다시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자신했다.

    이경화 핸드사이클 선수
    이경화 핸드사이클 선수

    “지금은 재활을 하고 있으니까 우선은 봄시즌 선수권 대회 3등이 목표예요. 오는 10월 전남 목포에서 열리는 전국체전까지 3등을 유지하고, 몸을 잘 만들어 2024년 김해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는 꼭 우승하고 싶어요.”

    이씨는 인터뷰 내내 우리나라의 열악한 장애인스포츠 현실을 지적하면서 처우 개선을 희망했다.

    “장애인 선수들도 운동으로 생활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장애인 선수로 활동하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핸드사이클 종목만 보더라도 장비 갖추려면 수 천만원이 필요한데 감당하기 어려워요. 타이어 한 번 펑크 나면 18만원이 들어요. 도로 라이딩 때 안전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훈련할 때 숙식도 직접 해결해야 하고….”

    “복지관에서 장애인들끼리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 스포츠가 활성화돼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스포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거든요.”

    46살에 핸드사이클을 시작한 이후 5년 동안 짧은 선수 생활을 이어 왔다. 벌써 51살인데 언제까지 선수로 뛸 수 있을 것 같냐고 묻자 잠깐 고민하다 “58?, 60?”이라며 활짝 웃었다.

    인생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는 ‘도전’이라고 확실하게 답했다.

    “정확하게 언제까지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지금도 재활 중이고 나이가 들면 아픈 곳이 더 많아지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도전할 겁니다. 선수로 힘들더라도 생활체육으로써 핸드사이클은 쭉 하고 싶어요. 두 아들에게 도전하는 엄마가 되고 싶거든요.”

    글·사진=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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