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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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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출근했습니다!”… 정 대리의 ‘출근길 인증샷’

창원문화원 정은경씨 사진전
유독 힘들었던 지난해 버텨내며
1년간 매일 사진으로 ‘출근 도장’

  • 기사입력 : 2023-01-31 20: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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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간 사진으로 출근도장을 찍은 창원문화원 ‘정대리’의 출근길 사진 ‘오늘도 출근했습니다’전이 문화원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창원문화원에서 4년째 근무 중인 정은경(38) 대리가 2022년 한 해 동안 출근할 때마다 문화원을 찍어 내놓은 결과물이다. 필름 사진처럼 한쪽 구석에 날짜가 기록되는 휴대폰 앱을 사용해 촬영한 238장의 사진이 전시실에 둘러져 있다. 휴일없이 매일같이 찍은 사진들이어서 계절과 날씨는 물론 문화원 강좌 변화도 사진에서 읽힌다.

    정은경 대리가 지난해 4월 5일 찍은 사진으로 제작한 전시 포스터.
    정은경 대리가 지난해 4월 5일 찍은 사진으로 제작한 전시 포스터.

    “어느날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가까워지는 창원문화원을 보니 건물이 너무 예쁘고 안정감이 있어 사진을 찍었어요. 입사한 첫 해인 2019년에는 개인적인 일로 힘들 때여서 안정감을 준 이곳이 무척 고마웠고 든든했어요. 그 때 이후로 간헐적으로 문화원 사진을 찍다가 2022년에는 습관처럼 매일 찍게 됐어요.”

    출근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는 의미 이외에도 이 사진들이 특별한 이유는 2022년, 우리 나이로 39세였던 그가 지독한 아홉수를 버텨낸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4월 17년간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냈고, 10월에는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아버지마저 보내드려야 했다. 문화원 업무도 매우 바빴던 시기다.

    “발인 다음날에 바로 출근했어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장례 후 이사도 했고요. 2022년 마지막 3개월은 죽었다 생각하고 숨만 쉬어보자 생각했더니 출근 사진을 찍는 것이 창원문화원에 ‘오늘도 잘 부탁한다’는 의식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런 가운데도 어쨌든 ‘오늘도 출근했습니다’는 마음이었고요. 전시 제목 그대로.”

    31일 오전 창원문화원 1층 전시실에서 ‘오늘도 출근했습니다’를 기획한 창원문화원 정은경 대리가 매일 출근길에 찍은 창원문화원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31일 오전 창원문화원 1층 전시실에서 ‘오늘도 출근했습니다’를 기획한 창원문화원 정은경 대리가 매일 출근길에 찍은 창원문화원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간절함을 담아 찍은 사진이지만 아무런 전시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회계 정산이 맞아 떨어졌음을 보고하던 때 자신도 모르게 문화원에 전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창원문화원을 담은 사진인 만큼 문화원도 흔쾌히 전시를 승낙했다.

    “1원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져서 ‘그 와중에 정신 차리고 일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버틴 제게 스스로 보상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왜 전시 기획이 보상일까. 지난 4년은 ‘펀빌리지’, ‘스페이스 펀’을 운영하는 문화기획자 ‘울랄라’로 활동했던 본성을 누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4년 전의 기질을 다시금 발휘했다. 출근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12개월간의 출근 시각이 적힌 달력을 함께 비치했고, 이력서부터 시작해 출근하자마자 듣는 음악, 마시는 커피, 뿌리는 향을 전시해 그의 출근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관람객은 ‘떡볶이 지도’ 등 그가 과거에 기획했던 활동 자료들도 함께 들춰볼 수 있다.

    그는 다소 딱딱하고 사무적인 정대리의 다른 모습을 공개하는 일이 일에 부작용을 불러오진 않을지, 그간 안정된 자아로 살아왔던 균형이 깨지지 않을지 걱정됐지만 창원문화원을, 평범한 직장인을 달리 볼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해 전시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정은경 대리가 출근길에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

    “향토연구가 주업무인 창원문화원이니 경직된 이미지가 있는데 이 시도를 보시면 ‘문화원에서 이런 게 가능하구나’, ‘직원도 이 공간을 이렇게 사용하네’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요. 문화원도 유연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면 이 공간에서 좀 더 다양한 사람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정대리의 출근길 사진은 수많은 각자의 출근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창원문화원 정남식 사무국장은 존재의 증명을 떠올리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었다고 표현했다.

    “계단으로 출근하면서 전시 배너를 보는데 ‘오늘도 출근했습니다’는 한 문장에 위안을 받았어요. 기계처럼 올라가지 않고 스스로 ‘출근하는 사람’이라 자각하며 ‘일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관람객 238명(선착순)은 전시를 마친 후 출근길 사진 1장을 우편으로 받기에 전시 일부를 갖게 되는 경험도 선사할 예정이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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