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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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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인내는 썼다. 열매는 단가?- 이철웅(시인)

  • 기사입력 : 2023-02-23 19: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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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훈은 치열한 구석이 있다. 우리 집이 그랬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이 가훈을 만든 우리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경남에서 유명했던 섬유 회사의 생산직으로 시작됐다. 그 시절 어머니는 꿈 많고 활기찬 공순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꿈이 많다고 그 꿈들에 다디단 현실만이 열리는 건 아니었다. 섬유를 만들어내는 일터엔 물레들이 쉬지 않고 돌았다. 물레는 팽팽한 장력을 유지하며 회전했다. 밑에서부터 실을 끌어 올렸는데, 원료가 되는 실은 얇고 얇아서 예고도 없이 끊어졌다. 그 끊겨버린 실을 몸을 날리듯 주워 서로를 묶어 주는 게 어머니의 일이었다.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일하고 나면, 손에 지문이 다 지워졌다고 한다. 그 시절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가진 것 없었기에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일이 고될수록 그에 맞는 의미가 있어야 사람은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했던가. 그 시절의 수많은 사람이 그런 의미를 간절히 바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야근과 특근을 강요하는 회사에, 힘을 합쳐 사측의 부당한 대우로부터 이권을 찾아보자던 노조도 어머니의 ‘의미’가 되진 못 했다. 진정 내 편이 누군지 알 수 없이 물레처럼 빠르게 굴러가는 주변이 혼란을 더할 뿐이었다.

    그런 시절을 온몸으로 버티며 가정을 일궜기 때문일까. 어머니가 내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세상은 전쟁터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진 현실을 잘 견뎌내길 바라는 마음이 아리게도 ‘전쟁’이라는 단어로 내게 전달된 것이었으리라. 모성과는 별개로 어머니의 이런 전투적인 철학은 유년 시절 내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뭐든 제시간에 끝낼 것. 모든 문제를 다 맞힐 것. 그리고 틀리고 늦는다면, 벌을 받는다. 간단하면서도 사회적 구조를 집약한 교육이었다. 하지만 가르친다고 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바람과는 다른 아이였다. 자주 늦었고, 정답을 모두 맞히지 못했다. 잘할 때도 있었지만, 주어진 것을 못 할 때가 많았다. 아이가 할 법한 모든 실수를 빠뜨리지 않고 하는 내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나지 않고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였다. 내게 인내는 쓰기만 했고, 열매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권태였다. 이런 자괴감 끝에는 흔히 원망이란 개구멍이 유혹해 오기 마련이다. 길고 긴 원망은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잣대에서 내려와 나름의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머니 또한 나처럼 살아오며 혼나고 또 혼났던 것이다. 뭐 하나 잘 못 하게 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왜 가담하지 않느냐?’ ‘왜 지침대로 하지 않느냐?’ 경고를 넘어서 머릿속에 각인시키듯 꾸지람을 퍼부었겠지. 부처님은 삶은 고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주 찍어낸 듯 고통의 결이 비슷했다. 나는 혼나기 좋게 태어났다. 아주 멋들어진 신념도 대외적으로 강요되는 정치적 올바름도 돌아봐 주지 않는 인간 군상이었다. 가엽게 여겨주는 시선이 있다면, 그 또한 반갑게 맞을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있지만, 동정은 그리 달지 않다. 갈대의 재능은 아름답게 흔들리는 것에 있단 말을 안다. 나 또한 흔들리더라도 살아온 대로 인내하기로 한다. 그 끝에 열매가 열릴지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내의 맛이 조금은 달라졌을 뿐이다.

    이철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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