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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식민사관이라는 유령- 배한봉(시인)

  • 기사입력 : 2023-03-08 19: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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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3·1절에 일장기를 내걸고 ‘유관순이 실존인물이냐’, ‘일장기를 보면 눈이 뒤집히냐’고 반문한 세종시민이 언론에 보도됐다.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에 이런 소동을 벌이고도 모자라 이에 항의한 이웃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조롱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4년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한 인사는 ‘일본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여론 질타를 받고 낙마했다. 또 현직 정치인은 ‘조선은 스스로 망했다’는 이완용의 말을 스스럼없이 되풀이한 일도 있다. 이것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세기 전 조선총독부에서 전파하던 식민사관이 국민 의식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한국사회를 유린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참담할 따름이다.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만든 역사 관점을 뜻한다. 즉 한국인이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독립 의지를 상실하도록 하는 것이 중점 내용이다. 당대 한국인은 원치 않게 식민사관을 사실이라고 배운 피해자이고 일제는 가해자이다. 가해자는 진정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라는 주체적 조건을 갖춘 지금도 한 세기 전 조선총독부의 역사 관점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역사의 관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말기에는 너무 충격적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심사가 편치 않아 집 근처 상남단정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상남단정공원은 창원 출신 의열단 독립운동가 단정 배중세 지사의 순국기념비가 있는 곳이지만 인근 주민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독립투사들의 저항에 부딪히고 연합국에 패전하면서 이 땅에서 쫓겨 간 일본은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하고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21세기 벌건 대낮에 식민사관이라는 유령이 한국 사회에 준동하는 것을 더는 침묵으로 방치하면 안 된다. 구원을 씻고 일본과 우호 발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과거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전환은 주체성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배한봉(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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