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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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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병원 참사 유족의 눈물 “우리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5년 끝나지 않은 슬픔
2021년 손배소송 승소했지만
도·시 항소에 유족 고통 가중

  • 기사입력 : 2023-03-15 21: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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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참사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지도 5년이 넘은 저희가 기댈 곳은 어디 있나요?”

    5년의 세월을 버티다 지칠 대로 지친 장승희 씨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누르며 말문을 열었다. 장씨는 2018년 1월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참사(사망 47명·부상 112명) 당시 응급실에서 당직 근무 중 불이 나자 환자를 구하다 연기에 질식해 숨진 고(故) 민현식(당시 59세)씨의 아내다. 5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참사는 잊혀지고 있지만, 장씨를 비롯해 피해 유족들의 슬픔은 끝을 기약할 수 없다.

    참사 뒤 형사재판에선 병원 이사장이 지난 2019년 12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 등으로 징역 8년을 확정받았고, 병원 안전점검 결과를 허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밀양시 보건소 공무원 2명에게도 벌금형이 내려졌다.

    견디기 힘든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무너지게 하는 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병원과 국가가 화재를 예방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유족들은 지난 2020년 2월 경남도와 밀양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장씨와 간호사, 환자의 유족 등 총 12명이 참여했다.

    지난 2018년 1월 47명의 사망자를 낸 밀양세종병원 화재현장. /경남신문 DB/
    지난 2018년 1월 47명의 사망자를 낸 밀양세종병원 화재현장. /경남신문 DB/

    장씨는 15일 통화에서 “사망자 47명 중 상대적으로 피해보상금이 적은 연세 많으신 분들 먼저 보상한다고 해서 그분들 먼저 진행한 후 우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종병원이 ‘사무장 병원’으로 운영된 사실이 밝혀지고 부당이익금 환수 절차가 진행되면서 보상 절차가 중단됐고, 이후 소송을 제기했을 때는 의료재단 재원이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며 “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서 손해배상을 먼저 받을 수 있게 환수 절차를 좀 미뤄달라고 요청도 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송 제기 1년 7개월 뒤인 2021년 9월,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장씨 등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경남도와 밀양시가 화재 발생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관리 부실로 인명피해를 키운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국가안전대진단 당시 피난 안내도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점, 비상 발전기 점검을 병원 말만 믿고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 등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두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70%로 동등하게 봤다. 경남도와 밀양시는 항소했다. 경남도는 “소방시설 관리 점검의 1차 책임은 밀양시에 있다”는 점을, 밀양시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화재 피해를 예방할 의무가 밀양시에는 부과돼 있지 않은 점과 발전기 점검은 경남도가 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재판이 계속되면서 유족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급기야 2심 재판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둔 지난해 3월 15일, 화재 당시 36세로 사망자 가운데 가장 젊었던 간호사 고 이희정 씨의 남편인 문성규 씨가 뇌출혈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내를 잃은 뒤 아들을 먹여 살리려 전국을 오가며 일하던 그는 배상도 받지 못하고 화물차 안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장씨는 문씨의 첫 기일인 15일 “항소심으로 간 후 문씨가 많이 힘들어했다”며 “보상이 제때 이뤄졌다면 안타까운 죽음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유족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건 지지부진한 항소심. 2021년 9월 항소 후 2022년 4월 시작된 재판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재판부 3명 중 2명이 최근 바뀌면서 유족들은 재판이 더 길어지는 게 아닐지 애가 탄다.

    장씨는 참사로 가족을 잃은 지 5년이 넘도록 아직도 배상받지 못한 유족들이 기댈 곳은 어디냐고 반문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권력기관은 자기네들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손실을 안 보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 시간 끌기로 재판을 이어오며 ‘2차 가해’를 하고 있습니다.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나요?”

    다음 재판은 오는 5월 11일 창원지법 별관 311호에서 열린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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