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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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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발언대] 노동시간 개편, 약이냐 독이냐- 조규홍(경제부)

  • 기사입력 : 2023-03-27 19: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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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취재차 도내 중소기업 몇 곳을 방문했다. 이들 업체는 각기 다른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고 천만불 수출탑 수상 기업을 비롯해 기업 규모도 다 달랐다. 하지만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똑같았다. 더 이상 제조업 공장을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어렵게 뽑아도 출근 후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도망’을 가는 일도 수시로 일어난단다.

    최근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제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재검토에 나섰다. 업체 특성별로 노동시간의 일부 유연화는 동의한다. 일 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갑자기 물량이 몰리면 주 52시간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전체 노동시간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발표는 노사 재량을 확대해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1년 기준 14.2%에 그친다. 근로자대표제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이 상황에서 노와 사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사의 재량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또 정부는 개정안 처음 발표 때 ‘3중 건강보호장치’를 통해 실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포괄임금 오남용은 발본색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위반 사업장을 단속하고 처벌할 구체적 내용은 빠져 있다. 이번 재검토를 통해 전체 노동시간 연장 우려를 해소할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또 다른 우려는 기업들의 경직된 노동 인식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첫 발표가 나오자 경제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냈다. 한 경제 단체는 이번 개편안이 ‘낡은 법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한 중소기업단체는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한 입장문에서 이번 기회에 노동시간을 더 늘려야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반면 최근 경남에 본사를 둔 한 대기업은 대규모 채용공고를 내며 자율출퇴근을 비롯한 복지제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취업 준비하는 청년이나 이직을 원하는 노동자들이 어디를 선택할까. 답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더 오래 일할 우려가 있는 제도 개편을 반길 (예비)노동자가 과연 있을까. 노동시간제도 개편이 낡은 규제를 잘라내는 칼이 될지, 아니면 인력난을 더 가중시키는 역날검이 될지는 기업 인식 변화에 달렸다.

    조규홍(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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