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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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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7주년 기획] 77세 라상호 사진가 꿈의 여정 ⑥ 공중부양 도시, 마추픽추

운해를 뚫고 숨어 있던 공중도시가 열렸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잉카제국 수도 쿠스코
농작물 재배단지 ‘모라이’·산 중턱 염전 등

  • 기사입력 : 2023-04-04 08: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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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20일

    드디어 잉카유적을 찍으러 페루에 왔다. 잉카는 1430년 이후 약 100년간 중앙 안데스를 중심으로 제국을 형성했으며 오래된 고유한 역사를 갖고 있다. 제사 유적 카랄과 모체왕국, 나스카 문화가 대표적이다. 나는 공중부양 도시라 불리는 마추픽추가 늘 궁금했다.

    ‘왜 그들은 산으로 갔을까’ 이런 질문을 안고 살아오며 이들이 남긴 유산을 담을 오늘을 기다려왔다. 페루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부터 구하기가 힘들어 당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잉카는 단어에서부터 가슴을 뛰게 했다. 비현실적인 현실에 멍해져 온다. 오늘은 일단 쿠스코에서 쉬며 숨을 골라야겠다.

    잉카 문명이 숨쉬는 마추픽추의 모습.
    잉카 문명이 숨쉬는 마추픽추의 모습.
    페루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페루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3월21일

    새벽잠을 설치고 창밖을 보니 아르마스 대성당이 비에 젖어 있다. 큰일이다. 나는 마추픽추를 담으러 길을 나서야 하는데! 고대도시의 웅장함과 조우해야 하는데…. 비를 보니 주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나의 길은 오직 한길밖에 없다. 나서야 한다. 아르마스 대성당 앞에서 잉카의 후예와 귀여운 라마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니 금세 기분이 좋았다. 비는 멎을 것이다.

    쿠스코와의 첫 만남에 나는 충만해 있다.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 세상의 중심이라는, 믿는 마음의 배꼽이라는 뜻의 쿠스코, 장엄하며 아름답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일을 위해 이제부터 함께할 장성오(24) 실장과 한국식당 K-FOOD에서 맛깔스런 두루치기와 김치찌개로 향수를 달랬다.

    잉카 후예들의 잉카 전통 생활 염색인 친체로.
    잉카 후예들의 잉카 전통 생활 염색인 친체로.

    3월22일

    잉카인들의 생활 지혜를 ‘친체로’에서 보았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실타래를 만들어 물을 들이고 옷감을 짜며 생활용품을 만드는 수작업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선인장에서 자라는 벌레는 빨강을 내어주는데 그 색은 입술에 바르는 붉은 ‘루주’이기도 하다. 친체로는 1572년 잉카인이 세운 유적지 위에 1602년 스페인 정복으로 스페인 종교문화가 접목된 곳이란다. 잉카의 섬세한 돌 기단석 위에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모라이는 농작물 재배 시험단지로 알려져 있다.

    원형 계단식은 밑에서 싹을 틔워 윗단에서 재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계단마다의 온도 차가 4~5℃였다고 하니 그들의 과학적 지혜가 돋보인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살리네라스 염전이다. 놀랍다, 산에서 만나는 소금밭이라니. 꽤나 높은 산 중턱에 있는 3000여 개의 소금밭은 약 1억1000만년 전 안데스산맥이 형성될 때 지하 초염수가 샘에서 솟아 나와 염전이 돼 1등급 소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그저 또 한 번 놀랄 뿐이다. 오늘은 잉카제국이 처음으로 스페인의 침략에서 승전한 오얀따이땀보에서 하루 묵고 내일 새벽 6시 마추픽추로 향하는 열차를 탈 예정이다.

    살리네라스 소금밭. 1억1000만년전 안데스 산맥 형성때 부터 지하초염수샘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살리네라스 소금밭. 1억1000만년전 안데스 산맥 형성때 부터 지하초염수샘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3월23일

    아구아쓰깔리엔떼까지 오는 열차의 멋스러움이 좋았다. 두 칸짜리 작은 열차가 작은 궤도 위를 덜컹거리며 꽥꽥 기적소리를 내며 잘도 달려왔다. 차창 밖의 바람의 향기도 좋았다. 열차 안은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고, 말소리가 요란했다.

    갑작스럽게 날이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찬 기운을 내뿜는다. 이내 비가 쏟아진다. 오늘은 마추픽추를 처음 만나는 날인데 마추픽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끝이 없다. 판초 우의로 무장하고 버스에 올랐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기를 30여분, 그리고 30여분을 더 걸어서 닿은 곳, 마추픽추. “오랜만입니다”하고 인사를 건넨다. 정말 오랜 기다림과 설렘이었다.

    어깨 위에는 작은 비가 내려앉았고, 마추픽추에는 운해가 오갔지만 오히려 운치 있었다. 36년 전 처음으로 앙코르와트를 찾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저 무념무상으로 구름비가 오가는 속에서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오후가 되면 날이 좋아질 것으로 보였는데, 3일간 산사태 공사를 위해 11시 30분에는 하산을 해야 한단다. 할 수 없다. 내일이 있지 않은가. 내일은 와이나픽추가 있다.

    와이나픽추에 올라가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와이나픽추에 올라가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운무가 끼여 장관인 와이나픽추.
    운무가 끼여 장관인 와이나픽추.

    3월24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하늘은 비 먹은 구름이 있다. 또 한 번 버스 행렬에 끼었다. 와이나픽추를 오르는 일은 실로 고행과도 같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지지 밧줄을 당겨서 1시간 길을 오르는 일이 예사가 아니다. 어떤 구역은 네 발로 기어오르기도 해야 했는데 무거운 두 어깨와 발을 달래며 올랐다. 말없이 묵묵히 몇백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짜맞춘듯 정교한 건축물을 만든 장인들이 내뿜는 소리를 듣고 싶다.

    비가 멎고 날이 밝다. 왜 그들은 이 오지에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놓았을까? 태양의 신전에서는 어떤 제사를 지냈고, 달의 신전에서는 무엇을 기원했을까?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 세계문화유적으로 남아있지만 기록이 없어 추정만 할 뿐이다. 먼 산엔 구름이 걸쳐 있다. 나는 있는 것 그대로를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작은 다리를 보고 나는 또 모험한다. 바위 끝자락에 달라붙어 촬영했다. 자칫 잘못하면 황천길이란다. 정상에 오르니 서서히 구름안개가 걷히고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여기 서 있는 나는 모두의 덕분이다. 감사할 뿐이다.

    잉카 문명이 숨쉬는 마추픽추의 모습.
    잉카 문명이 숨쉬는 마추픽추의 모습.
    해발 5400m의 비니쿤카 무지개산.
    해발 5400m의 비니쿤카 무지개산.

    3월25일

    페루에서 마지막 작업이 될 무지개산으로 향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길을 떠나 4시간을 더 가야 한다. 해발 5400m, 고산지대여서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많다. 가는 길부터가 첩첩산중이다. 안내를 맡아준 젊은이, 장성오씨와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모험심 많은 그의 꿈은 바리스타와 셰프란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고 싶어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청주를 떠나 커피의 나라 과테말라 안티구아까지 날아갔다고 했다.

    페루 일정에서 안내를 맡아준 장성오(24)씨와 기념사진 한 컷.
    페루 일정에서 안내를 맡아준 장성오(24)씨와 기념사진 한 컷.

    알베르토 할아버지의 커피농장에서 7개월을 머물다 멕시코, 코스타리카를 돌아 페루 쿠스코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경험 삼아 몇 개월째 가이드로 일하고 있지만 다음 달부터는 마추픽추 아랫마을 아우아쓰깔리엔떼에서 K-FOOD 한국식당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당당하고도 차분한 모습에는 또 다른 모험심이 있었다. 그를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당신의 10년 후를 보고 싶다’고 이 모험가에게 말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가 함께 애써준 덕분에 칠색무지개산 작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만년설이 덮인 네팔과는 또 다른 색색의 무지개산.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작업으로 해발 5000m가 넘는 곳에서 행복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다섯 번째 꿈을 담기 위해 칠레 산티아고를 들러 이스터섬 모아이석상을 만나러 갈 차례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창동갤러리 관장

    정리=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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