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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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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콧잔디이가 매그라운 곳- 손정란(수필가)

  • 기사입력 : 2023-04-06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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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질막한 산등때가 산태미맨치로 감싸 안은 고향 마실의 한가분데로 또랑물이 흘렀지. 물은 마실 어귀에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또랑둑 밑을 휘돌아 내리가다 큰 냇물을 만내고. 결사납게 디끼다 진주 남강의 아래깍단 두 물머리에서 보태지더라. 백 살은 넘었지 싶은 모징이 들판의 포구나무 굵은 가지에 동네 총각들이 매어 놓은 군데를 뛰거나, 논고동을 잡거나 찔레 순을 껑끄 묵던 에린 시절이 거기 있었다네.

    울 할매와 아부지는 겜상으로 드리고 낡은 두레상엔 어무이와 항께 묵을 밥이 담긴 옴팍한 양푸이가 낳이곤 했지. 삼시시끼 밥해 묵고 깨금 한 분 띠고 나먼 배고푸다고 고오매 찌 묵고새고. 멀기서 부엥이와 포쭉새 울음소리가 들리오는 이슥한 밤. 건니방에서 남행지들이 가위바위보놀이를 함시로 굿이 한다리끼더니 어느 새애 양배차겉이 쩌안은 채 잠이 들고.

    초개집들이 옹기종기 송이버섯맨치로 엎디린 마실. 대대로 물리서 내리오는 이바구가 마이 퍼져서 만년구짜다. 그라이 꿈도 희망도 에린아들과 항꾸네 자라는 시상이더라. 먼댕이, 고개말레이, 얍닥, 산꼴짝, 다랑논도가리, 또랑물, 바구, 당산낭게까지 전설을 품었지. 도째비와 뚬벙 구신과 서낭신도 어룬 에린아 엄이 한두 가지 지어 보태는 마실이었응께네.

    볼품엄어져도 고향은 그렇굼 이바구의 알 수 엄는 영엄한 힘으로 우리 땅 어데라도 보란드키 살고 지고. 사램들의 희망이 이카는데 까닭 엄이 눈서풀 축축하이 적샀는 곳. 독다리로 냇물을 건니고 열두 앵고갯마루를 넘우서 산모티이를 돌아야 하는.

    초등핵교 육학년. 중핵교 입학시험 공부 하니라고 어둑시리한 고갯질을 발맘발맘 넘우오다 보먼 무숩어서 온몸뚱아리는 땀에 솔빡 젖는기라. 자드락질의 끄튼머리에 짚은 뚬벙 여불대기의 다랑논머리를 지날 때마당 멀끄대이를 풀어 헤친 뚬벙 구신이 가찹기 오라고 부루는 겉애서.

    안마당 펭상 한쭈 모서리에 칼컬이 딲은 힌 코꼬무신 두 커리 엎우져 있네. 햇볕에 꼬둘꼬둘 몰라가는 호박우구리와 무시우구리가 주롬진 생을 삭히고. 날마당 울 어무이 손등더리에 잔금도 늘어 가누나.

    부석 뒷문을 열먼 민드래미꽃 뿍디기꽃이 돌댐과 어불리는 장꼬방이 있었제. 털버덕 주지안즌 옹기, 수더분한 간장둑, 펑퍼짐한 도가지와 중두리, 둥글넓적한 도랑사구, 아래우가 좁고 배가 부른 추마리가 미영소캐 겉은 햇살을 소로시 쬠시로 자부럼에 겨웠지.

    바지랑대를 내리고 거다들인 빨래를 마리에 퍼지앉아 올을 세아가며 개비던 해질머리. 삽짝문 여푼데이의 감나무는 가지마당 조랑조랑 감을 달고 우드커이 섰다가 뉘 발재죽 소리인가 쫑굿거리더라. 무다이 주홍색이 서거푼데 깐채이가 억시 시끄럽게 우데.

    고향은 콧잔디가 매그라운 애리고 쓰린 이름이더라. 여름 내두룩 능소화가 피고지고 흑담은 뭉그러졌으이 사라지고 허물어져가는 것은 모도다 눙물겹구먼. 푸지고 오불시런 정이라서 몬내 그리분, 그렇굼 비아감시로 옴나위엄이 깜빡깜빡 잊이삐고 사는 이름.


    [표준어]

    나지막한 산등성이 삼태기처럼 감싸 안은 고향 마을의 한가운데로 도랑물이 흘렀다. 물은 마을 어귀에 벚나무 한 그루가 서 있던 도랑둑 밑을 휘돌아 내려가다 큰 냇물을 만나고. 거칠게 뒤채다 진주 남강의 아래쪽 두 물머리에서 보태진다. 백 살은 넘었지 싶은 모징이 들판의 포구나무 굵은 가지에 마을 총각들이 매어 놓은 그네를 뛰거나, 논우렁이를 잡거나 찔레 순을 꺾어 먹던 내 어린 시절이 거기 있었다.

    울 할머니와 아버지는 겸상으로 드리고 낡은 두레상엔 어머니와 함께 먹을 밥이 담긴 옴팍한 양푼이가 놓이곤 했다. 삼시세끼 밥해 먹고 깨금발 한 번 띠고 나면 배고프다고 고구마 찌 먹고 그랬다. 멀리서 부엉이와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이슥한 밤. 건넌방에서 남 형제들이 가위바위보놀이를 하는지 재미지게 놀더니만 어느새 양배추같이 껴안은 채 잠이 들고 했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송이버섯처럼 엎드린 마을. 대대로 물리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서 만년치기다. 그러니 꿈도 희망도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세상이었다. 산봉우리, 고갯마루, 산비탈, 산골짜기, 다랑논배미, 도랑물, 바위, 당산나무까지 전설을 품고 있었다. 도깨비와 둠벙 귀신과 서낭신도 어른 아이 없이 한두 가지 지어 보태는 마을이었으니까.

    볼품없어져도 고향은 그렇게 이야기의 알 수 없는 영험한 힘으로 우리 땅 어디라도 보란 듯이 살고 진다. 사람들의 희망이 이러한데 까닭 없이 눈꺼풀 축축하게 적시는 곳. 징검다리로 냇물을 건너고 열두 고갯마루를 넘어서 산모퉁이를 돌아야 하는.

    초등학교 육학년. 중학교 입학시험 공부 하느라고 어둑어둑한 고갯길을 발맘발맘 넘어오다 보먼 무서워서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다. 자드락길의 끄트머리에 깊은 둠벙 옆의 다랑논머리를 지날 때마다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둠벙 귀신이 가깝게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아서.

    안마당 평상 한쪽 모서리에 깨끗이 닦은 흰 고무신 두 켤레 엎어져 있다. 햇볕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호박고지와 무고지가 주름진 생을 삭히고. 날마다 울 어머니 손등어리에 잔금도 늘어 간다.

    부엌 뒷문을 열면 맨드라미꽃, 분꽃이 흙 담과 어울리는 장독대가 있었고. 털버덕 주저앉은 옹기, 수더분한 간장독, 펑퍼짐한 독과 중두리, 둥글넓적한 도랑사구,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부른 추마리가 무명 솜 같은 햇볕을 고스란히 쬐면서 졸음에 겨웠다.

    바지랑대를 내리고 거두어들인 빨래를 마루에 퍼질러 앉아 올을 세어가며 개던 해질 머리. 사립문 옆의 감나무는 가지마다 조랑조랑 감을 달고 우두커니 섰다가 뉘 발자국 소리인가 쫑긋거리더라. 무단이 주홍색이 서글픈데 까치가 매우 시끄럽게 울었다.

    고향은 콧잔등이가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이다. 여름 내내 능소화가 피고지고 흙 담은 뭉그러졌으니 사라지고 허물어져가는 것은 모두 다 눈물겹다. 푸지고 올진 정이라서 못내 그리운, 그렇게 비워가면서 옴나위없이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사는 이름.

    손정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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