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13일 (목)
전체메뉴

[무나공간] 마산 교방동 복합문화공간 ‘살롱드계단길’

피난민 모여살던 마산 계단길에 ‘문화 新바람’ 분다

  • 기사입력 : 2023-05-11 20:49:46
  •   
  • 가로수길 살롱문화 앞장서던 ‘우주힙쟁이’ 자본 압박에 공간 이동
    마산 교방동 언덕에 1년3개월 공사 거쳐 복합문화공간 마련

    1층은 퓨전 아시아요리 파는 식당이자 카페… 가드닝 제품 판매도
    건물 옥상에선 예술공연 줄잇고 계단길 마당에선 플리마켓

    로컬 큐레이터 자처해 교방동~추산동 골목문화 살리기 뛰어들어
    “지역 업체와 협업하고 젊은 예술인 주체된 로컬 문화 형성 목표”


    오월의 낮, 창원 가로수길에 포근한 봄바람이 일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바람 따라 향한 곳은 마산합포구 교방동의 한 골목. 탁 트인 도시 전경이 드러난 새로운 공간에는 상쾌한 산들바람이 맞이하고 있었다.

    봄을 떠나보내고 여름을 기다리는 이곳에 오는 15일 ‘살롱드계단길(SDG)’이 정식 개점한다. 식당을 중심으로 가드닝(정원 돌봄) 마켓, 공연을 위한 루프탑 바, 플리마켓 등을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공간 안에서 만난 서송현(25·여) 대표와 조력자인 부모는 막바지 개점 준비로 분주하다. 이들은 1년 전 ‘핫플’로 자리 잡은 가로수길을 떠나, ‘무명(無名)’의 교방동으로 향한 사람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추산근린공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살롱드계단길’의 옥상은 음료·맥주를 마시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추산근린공원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살롱드계단길’의 옥상은 음료·맥주를 마시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5년 전인 2017년 가로수길에 ‘살롱드가로수’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생겼다. 서브컬쳐, 아마추어 등 ‘B급 문화’를 지향했던 공간은 책과 맥주, 공연을 통해 자신만의 로컬 문화를 조성했다. 훗날 싱어게인에 출연해 전국구 스타가 된 가수 ‘정홍일’을 비롯해 ‘국빈관진상들’, ‘곰치’ 등 지역 인디밴드가 이곳에서 공연하며 꿈을 키웠다. 수익보다도 재미난 일들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 살롱은 5년 만에 낯선 단어 ‘젠트리피케이션’에 직면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된 후 유입한 계층이 기존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5년간 큰 길목에 한정됐던 가로수길 상권은 골목까지 확대됐고 대규모 상업지대로 발전했다. 이들은 임대료가 두배가량 오른 것은 둘째 치고, 음악 소리 때문에 공연하지 말라는 건물주의 컴플레인을 감내할 수 없었다. 결국 자본의 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살롱문화를 즐길 곳을 찾아 나섰다. 교방동은 6·25전쟁 때 마산으로 온 피란민들이 형성한 계단길이 많은 동네다. 서울 해방촌과 닮은 점이 많은 한적한 동네에 시선이 멈췄다. 상권조차 형성되지 않았지만 문신미술관, 임항선 그린웨이 등 곳곳에 예술 문화공간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공사 기간만 1년 3개월이 걸렸다. 기울어져 있던 집을 다시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 선선한 바람이 자주 부는 특징을 살려 모든 공간에 바람이 잘 통과하도록 리모델링했다. 학업 때문에 몇 년간 서울에 머물렀던 서송현 대표는 살롱드계단길 개점에 맞춰 한 달 전 창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20살에 시작한 살롱드가로수는 조력자인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곳 살롱드계단길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젊은 취향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전체적인 공간은 서 대표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태국 치앙마이의 휴양지 느낌을 내고자 했다. 오는 27일 계단길 마당에서 예정된 플리마켓 또한 플리마켓의 도시라 불리는 치앙마이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다. 플리마켓은 주로 친환경 제품 위주로 꾸릴 계획이다. 1층 식당에서는 해장에 좋다는 ‘똠얌 라면’과 ‘카우 팟(돼지고기 바질 볶음밥)’ 등 퓨전 아시안 요리류와 커피·술을 맛볼 수 있다.

    식사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내부 공간.
    식사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내부 공간.

    1층 건물의 옥상은 평소에는 루프탑 형식의 바(bar)로 운영되고 공연이 있는 날에는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당장 12일 오후 6시 ‘국빈관진상들’이 가오픈 공연을, 14일 오후 4시 40분 재즈연주팀 ‘마드모아젤S’이 오픈 기념 공연에 참여한다. 공연은 20명 사전 예약을 받았는데, 모두 일찍이 마감됐다. 계단길에서 열리는 공연은 수익금 전액이 아티스트에게 지급되는 점도 특징이다. 오는 20일 4시 30분에는 ‘민주신 얼룩말 트리오’의 재즈공연이 예정돼 있다. 복합공간 가장 구석에는 동굴처럼 된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서 대표가 친환경 재료인 제스모나이트나 커피찌거기를 활용해 만든 화분 등 가드닝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마켓 공간이다.

    살롱드계단길 하나만으로 완성된 복합문화공간을 이루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서 대표는 교방동과 추산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길 꿈꾼다. 실제로 이 공간은 그가 사전에 계획한 ‘이그저(이곳 그곳 저곳) 프로젝트’ 중 ‘이곳’에 불과하다. ‘그곳’과 ‘저곳’은 각 성호초등학교 앞과 추산아파트 인근에 위치해 있다. 세 곳은 도보로 20여 분 거리로, 그곳과 저곳은 향후 공방과 작업실로 만들 계획이다.

    저녁 시간대 살롱드계단길 입구
    저녁 시간대 살롱드계단길 입구

    스스로를 ‘우주힙쟁이 로컬 큐레이터’로 칭한 서 대표는 이제 교방동~추산동 골목 살리기에 주력할 계획이다. 마산의 로컬 상품을 만드는 업체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해 협업하고, 젊은 문화예술인에게 전시 공간과 공연 공간을 제공하며 그들이 주체가 된 로컬 문화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동안 행정 주도의 구도심 재생사업의 청사진은 사업이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구도심의 활성화를 꿈꾸는 것은 자칫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젊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교방동’이 언급되는 게 우연은 아닌듯 하다. 쇠퇴한 도시 마산, 그중 가장 구도심인 교방동에 문화의 신기류가 산들산들 부는 듯하다. 가로수길에서 온 한 가족으로부터 말이다.

    /인터뷰/ 서송현 살롱드계단길 대표


    “지역 예술인과 재미난 일 벌이는 힙한 대안문화 공간 만들 거예요”

    Q. 살롱드계단길(SDG) 구성원은 어떻게 되나?

    공대 교수가 본캐고 화가가 부캐인 아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비관적인 낙관주의자 엄마, 우주힙쟁이가 되고 싶은 딸, 그리고 공개하지 않은 남동생도 있다. 부모님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지만, 힙에 살고 힙에 죽는 멋쟁이들이다. 저도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왔다.

    Q. 살롱드가로수와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낸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신념처럼 지키고 있다. 전문성을 따지지 않고 모든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에든버러의 ‘프린지 페스티벌’처럼 이 공간이 하나의 ‘대안문화’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자 한다. 더해진 점은 친환경·윤리적으로 운영하는 ‘컨셔스 브랜드’를 목표로 지역적인 것과 친환경적인 것을 강조해 지속 가능한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 ‘로컬 큐레이터’가 돼 교방동 골목을 지역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된 새로운 문화거리로 만들어 보고 싶다.

    Q. 왜 카페 하나 없는 교방동 계단길인가?

    맞다. 주변에 상업적 문화공간이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서 지내며 구도심이 핫플로 바뀌는 모습을 쭉 봐왔다. SDG 하나가 아닌, 이그저 프로젝트 전체로 보면 교방동이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죽어가는 마산에 지역 향기 가득한 힙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B급 감성이 다 그렇다.

    Q. 앞으로의 바람과 각오는?

    당장은 공방이나 작업실로 활용할 그곳, 저곳 공사가 잘 시작됐으면 한다. 이후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하며 재미난 일들을 꾸준히 만들어 가고 싶다. 또래 예술인들도 주변으로 와서 함께 으쌰으쌰 하면서, 관광객들이 막 찾아와 동네가 유명해졌으면 한다. 가로수길과 서울에서 많이 배웠다. 저에게 가로수길은 못살면 속상하고 잘살면 짜증 나는 전 남자친구 같은 존재인데, 이렇게 된 거 제가 잘 살고 싶다.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저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글= 김용락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용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