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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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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19) 허소운 화가

‘디지털 콜라주’로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담다

  • 기사입력 : 2023-09-15 08: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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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전 2회 가진 28살의 전업작가 5년차
    기획전 등 전시회 20여회 참가 활동 왕성
    의미없는 이미지들 반복적 수집과 배치
    연결과 충격 통해 새로운 관념 창출 노력
    “많이 배우고 잘 표현하는 작가 되고파”

    ‘예술작품은 명확해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명확하면 예술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샤갈(Chagall)의 말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세상이 복잡하고 무서워질수록 예술은 더욱 추상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전시회에 가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끼는대로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자주 듣게 되는지 모른다.

    허소운 작가가 작품 ‘stor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소운 작가가 작품 ‘store’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화가 허소운(28)의 작품도 독자들에게는 무척 낯설고 난해하게 다가온다. 디지털 콜라주(Digital collage)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그의 작품은 작품 속 오브제들이 필연성에 의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하게 의미 없이 둥둥 떠다닌다는 느낌을 준다. 잘 알다시피 콜라주는 ‘풀로 붙인다’는 뜻으로, 20세기 초반 피카소 등 입체파들이 유화의 한 부분에 신문지나 벽지, 악보 등 인쇄물을 풀로 붙여 보는 사람에게 이미지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한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사회 풍자적 몽타주(montage)가 생겨나고, 팝아트(pop-art)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가 잉태되었다.

    판단할 잠시의 시간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의식 또는 무의식을 흔들어 강박적이게도 그 흔적을 끊임없이 수집하게 한다. 작품명 ‘City map’.
    판단할 잠시의 시간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들은 작가의 의식 또는 무의식을 흔들어 강박적이게도 그 흔적을 끊임없이 수집하게 한다. 작품명 ‘City map’.

    허소운의 작품 역시 기존의 규범과 관습에 저항하며 의식의 흐름을 쫓는다는 점에서 다다이즘(dadaism)과의 근친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이분법적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저항적 면모를 서서히 띠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학을 전공하고 2021년 스물여섯이란 이른 나이에 두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허소연씨. 올해 스물여덟, 그 어려운 전업 화가의 길로 접어든지 5년째, 단체전과 기획전까지 합쳐 20여회의 전시회에 참가하는 놀라운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창작열의 밑바탕에는 대학졸업을 앞둔 2019년 창원청년아시아미술제 쌀롱전(창원 성산아트홀)과 아시아프(ASYAAF, 서울 디자인플라자) 등 굵직한 전시회에 초대받은 자신감이 자리잡고 있다. 이론과 실기로 단단히 무장한 그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앞둔 현 시점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갖기 위한 내적 고투도 진행 중이다.

    “저는 이미지를 수집하는 화가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미지는 스스로를 뽐내며 다가와 거부할 수 없게 만들지요.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일단 받아들임으로써 수집하게 된 이미지는 SNS와 같은 아주 밀접한 곳에서 계속 탄생하고 우리 곁을 맴돌고 있지요. 판단할 잠시의 시간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미지들을 날것으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의 중요한 작업과정입니다”

    그의 이미지 수집은 거의 강박에 가깝다. 그 강박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욕망이 기저에 깔려있고, 욕망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기표(記標)를 수단으로 삼는 또 다른 기표를 찾아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와 대화 도중에 다분히 정신분석학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수집한 복제 이미지는 작업과정에서 재생산되며 중첩적으로 쌓아나갑니다. 규칙과 순서에 상관없이 파편화된 형상들은 화면에 일종의 저장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방식을 차용하지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개체 간의 상호관계성이 없이 반복되는 수집과 의미 없는 이미지들의 부유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를 현대사회의 구조로 인식하고, 그런 틀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나를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발현으로 보아주면 좋겠어요”

    작품의 이미지를 AI 프로그램으로 인식시켜 보았더니 이미지는 아랍어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나온 해석은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이었다. 작품명은 ‘식물의 클로즈업’.
    작품의 이미지를 AI 프로그램으로 인식시켜 보았더니 이미지는 아랍어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나온 해석은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이었다. 작품명은 ‘식물의 클로즈업’.

    청년예술인답게 그는 인공지능과 예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그의 작품 ‘식물의 클로즈업’은 이미지를 A.I(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인식시켜보는 시도에서 탄생했다. 그 결과 이미지는 아랍어로 인식되었고, 뜻은 ‘이것으로부터 우리는(From this)’이 나왔다. 이미지의 껍질만 보고 읽어주는 인공지능식 해석은 전혀 생뚱맞지만 한편으로 무엇을 받아들이는지도 모르는 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그래서 그는 이 텍스트를 전시 제목으로 정했다.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목이 지어졌다.

    그에게 있어 이미지의 수집과 배치, 페인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여백이다. 여백은 부유하는 욕망의 기표가 저장될 장소이자 우주적으로 증식할 수 있는 가능성 공간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무(無)의 색, 투명한 여백 또는 틈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저의 작업과정은 이미지 수집-디지털 콜라주(편집)-페인팅으로 진행됩니다. 이전에는 디지털 콜라주 과정 없이 수집한 이미지를 바로 툭툭 놓듯 캔버스에 표현했죠. 그러다보니 이미지를 포착하고 받아들이는 저의 복잡하고 강박적인 느낌이 잘 표현되지 않았죠. 재료(이미지)를 조금 더 첨예하게 표현하고 시공간이 명확하지 않은 중첩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디지털 콜라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 뒤 이어지는 페인팅은 디지털 화면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맥락의 이미지를 촉발하여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복잡다단한 기호 이미지는 지속해서 생산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생긴 차이로 공간을 연상할 수 있고, 부피감 있는 대상의 원근 묘사로 생긴 얇은 선과의 소실점 교차는 시공간이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소운 작가가 작품 ‘City map’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소운 작가가 작품 ‘City map’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스치듯 아주 짧게 휙 나타나는 섬광 같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곳곳에서 반짝했다가 ‘새로고침’ 하면 저 밑으로 사라지는 SNS처럼 무수한 스침을 반복하지요. 더는 이야기가 필요 없어진 단순한 순간들 속에서 여전히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화폭에 옮겨놓았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때로는 이미지들을 섬세하게 연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칠게 충돌시켜 새로운 관념을 창출하는 그의 작업은 순간적이고, 대중적이고, 개인적이고, 몰개성적이고, 매혹적인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오롯이 수용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 인간 소외를 심화시키는 현대문명의 차가운 얼굴 또한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앞으로는 마주하는 대상들을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관찰하고 더욱 주체적인 태도로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어요. 나를 관찰하거나 기록하는 방법으로 사진과 글쓰기를 배우고 책을 많이 읽어서 새로운 아카이빙을 통해 저의 존재를 증명해보려 합니다.”

    창작활동뿐만 아니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예술인 파견사업, 창원문화재단의 상주작가 지원사업 등에 참여하며 문화기획 분야 사람들과 일을 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는 허소운씨.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는 작가,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자신과 세상을 좀 더 열심히 관찰하겠다고 말한다.

    창원에 작업실을 따로 둔 그의 작품은 동료 청년작가 3명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자작성과전’이란 이름으로 오는 19일부터 10월 6일까지 진해야외공연장 전시장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김우태(시인)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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