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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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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김시탁의 전원 산책] (3) 난에 취한 사람들 (하)

언제 보아도 정갈하고 고귀한 이 자태… ‘蘭공불樂’

  • 기사입력 : 2024-03-15 08: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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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우내 머물고 있던 꽃망울 터지면 애란인 가슴도 설레
    한국 춘란, 잎 무늬 선명하고 다양한 색상·형태 꽃 특징

    꽃 색깔·무늬·형상에 따라 각양각색 이름으로 불려
    전국 곳곳 3월 전시회·품평회… 풍성한 볼거리 만끽

    난을 정성껏 키우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사는 사람들
    매끈한 잎새·향긋한 향기에 취해 난과 사는 보람 느껴



    온 겨울 머물고 있던 꽃망울이 터지며 드디어 한국춘란 보춘화가 개화했다. 애란인들의 가슴에 봉오리가 터진 것이다. 애지중지 심혈을 기울여 피운 꽃들은 전시회를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선보였고 전국의 애란인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난향에 취한 사람들 (상)편에 이어 개화한 난초를 (하)편에 옮긴다. 언제 보아도 정갈하고 고귀한 저 모습. 난 앞에서면 늘 부정맥이다.

    지난 2~3일 창원 문성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경남난대전. 약 20개 난우회 회원 300여명이 춘란 600여분을 출품했다./김시탁 시인/
    지난 2~3일 창원 문성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경남난대전. 약 20개 난우회 회원 300여명이 춘란 600여분을 출품했다./김시탁 시인/

    ◇한국춘란 보춘화(一莖一花)의 개화

    우리 춘란 보춘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온실에서는 2월 말경, 산지에서는 3월 중순경부터 개화가 시작되니 애란인들의 가슴도 설렌다. 첫 개화의 경우에는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하고 이미 피웠던 꽃들은 발색이 제대로 되어 피어줄까 내심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난의 꽃은 기후변화와 온도차에 따라 발색이 달라지므로 고정된 종자의 꽃이라도 해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온실에서 재배하는 춘란은 겨우내 수태를 덮거나 화통을 씌워 꽃망울을 관리하므로 2월 말경이 되면 꽃이 피니 산지보다 약 한 달쯤 빠른 것이다. 꽃망울이 여러 개 맺힌 것은 꽃이 여러 방향으로 제각각 피기 때문에 관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꽃을 한 방향으로 돌려준다.

    꽃의 방향을 돌리는 일은 전문가라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하다가는 애써 피운 꽃을 부러뜨려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을 돌리는 방법은 손으로 잡고 유도하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돌려 자연스럽게 고정시키는 일인데 일시에 되는 것은 아니고 꾸준한 반복 작업이 요구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가는 철사를 이용하는데 꽃대에 철사가 칭칭 감긴 모습은 아무래도 관상가치가 떨어져 보이지만 꽃대를 부러뜨리지 않고 쉽고 안전하게 고정시킬 수 있으므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 춘란의 꽃은 일경일화로 꽃대 하나에 한 개의 꽃이 핀다. 더러 두 개 이상의 꽃이 피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고정되지 않은 일시적 변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의 춘란은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핀다. 대표적으로 아홉 개의 꽃이 피는 일경구화(一莖九花)가 유명한데 우리나라에도 많이 수입된다. 일경구화는 향이 짙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주로 개업이나 승진 등 축하용 선물용 난으로 널리 애용된다.

    한국춘란 소심
    한국춘란 소심
    주금소심
    주금소심
    복색화
    복색화

    ◇한국춘란의 예(藝)

    우리 춘란은 향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약한데 비해 잎의 무늬가 선명하고 꽃의 색깔이 맑은데다가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꽃이 피는 게 특징이다.

    꽃은 색깔에 따라 홍화(紅花) 황화(黃花) 주금화(朱金花) 등으로 구분되고 꽃의 무늬에 따라 복색화(複色花) 색설화(色舌花) 중투화(中透花)로 구분되며 꽃의 형상에 따라 원판화(圓板花) 두화(豆花) 기화(奇花)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꽃에 무늬가 없이 맑은 단색의 꽃은 소심(素心)이라고 하는데 소심은 다양한 색깔의 꽃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구분된 예들이 더할수록 그 가치가 상승한다. 예를 들어 두화가 피었는데 꽃의 무늬가 여러 색이면 복색두화(複色豆花)가 되고 소심이면 두화소심(豆花素心)이 되므로 2예품(二藝品)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꽃을 무늬가 감은 복륜(福輪)으로 소심이 피면 복륜두화소심(福輪豆花素心) 3예품(三藝品)의 명품으로 탄생한다. 현재 우리 난계에 보고된 명화는 주로 3예품이며 4예품(四藝品) 이상의 출연도 가대된다. 이러한 우수한 난들은 이름을 정해 원예적 가치를 인정받는 심사를 거쳐 명품으로 등록할 수 있다. 대한민국난등록협회(大韓民國蘭登錄協會)에 등록된 난은 명감록(銘鑑錄)에도 등재된다. 난으로서는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셈이니 일생일란(一生一蘭)이라 할 만하다. 등록품(登錄品)은 난의 가격도 어느 정도 형성되어 정찰가격처럼 유통되고 분양된다.

    도화
    도화
    복륜화
    복륜화
    자화색설
    자화색설
    홍화소심
    홍화소심
    황화소심
    황화소심

    ◇마음이 앞서가는 채란길

    우리나라 산지에 자생하는 대부분의 춘란은 녹색의 꽃에 붉은 설 점이 있고 꽃장에도 일반적인 잡색 무늬를 띠는데 이러한 꽃이 피는 난초를 민춘란이라 한다. 그러니까 변이종이 아닌 난초는 모두 민춘란에 해당한다. 변이종을 만날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어서 애란인들은 로또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마음을 앞세워 산지로 채란길에 오른다.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는 희망이 가파른 산등성이를 쉽게 오르게 한다. 난을 오래 접한 전문가들은 꽃이 피어 있지 않아도 잎의 형태만 보고 명화가 필 난초라는 걸 귀신같이 안다. 개화철이 아닌 계절에도 채란을 가는 것은 엽예품(葉藝品)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산지를 누비는 애란인들의 눈에는 일생일란이 아른거린다. 낚시를 가거나 골프를 치는 것에 비하면 경비가 적게 들고 운동에도 좋으니 주말이면 방바닥에 등을 눕히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난초에 미쳤냐고 입이 튀어나오던 아내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진짜 미친 걸 알고부터는 그냥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판단하여 일찌감치 포기했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남편 따라 아내도 같이 미쳐 부부가 함께 산을 오르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사냥꾼 총에 죽지 않고 오래 살다 보니 참 별일 다 보겠다며 멧돼지도 기가 차서 피해 다닌다.

    원판화
    원판화
    두화
    두화
    황화
    황화
    복륜소심
    복륜소심

    ◇화예품 전시회와 품평회

    빠르게는 2월 말경부터 3월 초 전국의 애란인들은 겨우내 노심초사 재배해 온 난의 꽃을 피워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단위 난우회별로 품평회를 열기도 한다.

    애지중지 키워 아름다운 꽃을 피웠으니 혼자 보기엔 아까운 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배양해 개화한 난을 선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3월은 전국에서 전시회와 품평회 그리고 판매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3월 첫 주와 그다음 주말은 전국에서 많은 전시회가 겹친다. 우리 경남에서도 전시회와 품평회가 여러 곳에서 개최된다. 전시회를 관람하고자 할 경우 단위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볼 수도 있겠지만 연합전을 관람하는 게 더 풍성하고 볼거리가 있다. 아무래도 많은 단체가 합동으로 여는 전시회인 만큼 그 규모가 장대하니 출품된 우수품종을 한자리에서 마음껏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위 난우회전이나 품평회는 일반인보다는 회원과 가족들이 주로 관람하고 연합전은 전국에서 애란인은 물론 난상인들까지 대거 몰려와 관람한다. 우리 경남에서도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에 걸쳐서 경남난연합전이 창원 문성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약 20개의 난우회 300여명의 회원이 출품한 춘란 600여분이 전시됐다. 이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출품된 난은 꽃을 오래 피우고 있으면 난에 무리가 가서 세력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전시회를 마치면 곧바로 꽃대를 잘라준다. 산지의 난들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꽃을 피운 난초는 따로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분주 후 분갈이를 해서 배양에 들어간다. 자신이 출품한 난이 전시회에서 수상을 하면 소장자는 애배하며 심혈을 기울인 노고를 치하받는 기분이 들며 마음이 흐뭇하다. 수상을 하지 못한 경우라도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통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그것으로 흡족하다. 자신의 난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며 난인으로서의 보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주기 삼 년

    전시회나 품평회가 열려 좋은 난을 선보이고 애란인 상호 간 배양방법이나 정보를 교환하고 침목을 다지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무리하게 난을 구입하는 일은 자중하고 볼 일이다. 아무래도 출품을 하는 전시회다 보니 좋은 난을 선보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수상 욕심이 생긴다. 그러니 고가의 난을 구입해 출품하고자 하는 무리수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난의 배양을 오래 한 사람도 식물의 속성을 다 알지 못하여 귀한 명품의 난을 고사시키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직접 산지에서 채란한 난이라면 모르지만 구입하는 난은 어느 경로를 통해 어떻게 들어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배양되었는지 모르므로 실패할 우려가 있다. 더욱 고가의 난인 경우 촉수를 늘리기 위해 가온(加溫)을 한 난이라면 갑자기 환경이 바뀜으로 인하여 생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동해(冬害)나 냉해(冷害)를 입은 난은 바로 죽지 않고 길게는 몇 년에 걸쳐서까지 서서히 죽어가는데 그러한 난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 난의 냉해와 동해는 다른 일반 병해(病害)와는 달리 직접 배양한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고 육안으로도 바로 구별되지 않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나타나므로 결국은 고사하고 만다. 이러한 문제의 난이 시중에 유통되면 그 피해는 소비자가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구입한 난이 바로 죽지 않고 몇 년 지나 죽게 되므로 본인이 잘못 배양한 줄 알기 때문에 판매한 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실제 그 난을 판매한 상인도 결국은 어느 소장가에게 구입했을 것이고 그 소장가 역시 직접 채란하지 않았다면 또 구입처가 있을 것이니 원인 규명에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그러니 고가의 명품이 아니더라도 배양에 자신이 생길 때까지는 일반 민춘란이라도 정성껏 키워보며 배양력을 기르는 게 좋다. 시비하는 방법이나 소독 영양제 투입, 분주 후 분갈이 등 난 배양을 잘하기 위해서는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은 너무나 많다. 오죽하면 물 주는 법을 익히는 데 삼 년이 걸린다고 물주기 삼 년이라 하지 않는가.

    서예가 박금숙 님이 양초에 쓴 난향만리
    서예가 박금숙 님이 양초에 쓴 난향만리

    ◇진정한 애란인

    요즘은 난이 고가로 유통되고 애란인이 많아 난을 재테크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테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눈에 띄어야 하고 애란인의 이목을 끌어야 하니 동호회 전시회나 품평회 또는 판매전에 난을 출품하게 된다. 그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인정을 받거나 수상을 하게 되면 그 난초는 가치가 상승하므로 분양 및 매입을 희망하는 수요자가 늘어나 적정 가격으로 판매가 이루어지니 재테크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애란인이라면 재테크와 상관없이 난초 자체가 좋아 난을 배양하는 경우일 것이다. 굳이 고가의 난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채란한 난을 정성껏 키우며 난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져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좋은 명품보다는 자신이 배양하는 건강한 난에 더 애정이 있어 부러울 게 없다. 그러니 무리하게 난을 구입하거나 수상에 욕심을 내지도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난을 애배(愛倍)하는 것이다. 매끈한 잎새와 향긋한 향기에 취해 난과 함께 사는 삶에 보람을 느끼면서 말이다.

    몇 년 전 일이지만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불미스러운 기억이 있다. 어느 전시회에서 난을 출품한 회원 하나가 자신이 출품한 난이 수상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역정을 내며 출품한 난을 회수해 간 일이 있다. 그분을 알고 있었기에 평소 성품으로 볼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이 그 당시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상을 하지 못하면 난이 아닌가. 오직 수상을 위해 난을 배양하고 전시회에 출품하지 않았다면 그러한 행동은 진정한 애란인의 모습이 아니기에 적잖게 실망했다. 실로 난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전시회에서 수상한 주금소심과 두화소심
    전시회에서 수상한 주금소심과 두화소심

    ◇난과의 외도는 무죄

    난은 말이 없지만 향기가 있다. 난은 소슬바람에도 이파리가 흔들리지만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난은 잎을 쳐들지만 도도하지 않고 숙이지만 비굴하지 않다. 난은 한자리에 났어도 제 갈 길 알고 갈 만큼 가면 멈출 줄 안다. 난은 너무 많은 것도 좋아하지 않고 너무 적은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난은 잎이 타들어 가면서도 물을 조르지 않고 고사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족 번식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신아(新芽·새 촉)를 밀어 올린다. 난은 눈더미 속에서도 얼지 않고 땡볕에도 시들지 않는다. 사시사철 단 한 벌의 옷으로도 한결같이 아름답고 변심 없이 푸르다. 이쯤 되면 무슨 재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만지고 다듬고 씻기고 먹이고 가슴 깊숙한 곳에 묻고 살지 않는가. 난과 외도로 새끼를 수없이 쳐대도 난이 안방 차지하고 앉을 일 없고 가정파탄 날 일 없으니 아내조차 도다리 눈빛을 쏘아대지 않는다. 그러니 난과 한통속으로 놀아나는 질퍽한 연애는 눈꼴사나울지 모르지만 지탄받을 일은 아니니 무죄다. 굳이 죄를 덮어씌워 감옥에 처넣는다 해도 난과 함께라면 종신징역이라도 살겠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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