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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6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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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5) ‘광해, 왕이 된 남자’ 밀양 월연정(月淵亭)

17세기로 시간여행… 이곳에 광해가 보이는가

  • 기사입력 : 2024-05-10 08:12:09
  •   
  • 재위 중 15일간 사라진 광해 이야기
    2012년 9월 개봉… 1232만 관객 기록
    감독상 등 대종상 15개 부문 휩쓸어

    밀양강 내려다보이는 월영연 언덕 위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가 세운 별장서
    암살의 기운 느끼고 피신한 장면 찍어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간다. 이곳은 광해군이 암살의 기운을 느끼고 15일 동안 피해 있던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월연정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월영연(月影淵)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를 지냈던 월연 이태가 기묘사화 직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에 세운 별장이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것을 1757년(영조 33)부터 여주 이씨 후손들이 중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 정원의 모습이 담양 소쇄원과 비교되곤 하는데 이곳엔 강 벼랑 위에 있어 또 다른 멋을 풍겨준다. 4월의 월연정은 수목이 우거져 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을 낙엽 지고 난 후, 보름달이 뜰 때 나목들 사이로 보이는 월주경을 상상해 본다. 1985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월연정 아래 절벽에 백송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월연정 위 ‘용활터널’은 곽경택 감독이 영화 ‘똥개’를 찍은 곳이기도 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이곳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월영연(月影淵)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밀양시/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이곳은 밀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월영연(月影淵)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밀양시/
    광해군이 암살의 기운을 느끼고 피해 있던 장면을 촬영한 월연정.
    광해군이 암살의 기운을 느끼고 피해 있던 장면을 촬영한 월연정.

    ◇기방의 만담꾼, 임금이 되다

    이 영화는 나이테 하나로 산을 그려낸 수작이다. 일대기를 그린 대하가 아니라, 재위 중 사라진 15일을 통해 광해를 이야기한다. 기방의 만담꾼을 임금으로 만든 상상력이 기발하다. 많은 것을 생략하고, 하선(이병헌 분)과 허균(류승룡 분)이 서로 밀고 당기며 스토리를 끌어간 것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임엔 틀림없다.

    허균은 3번의 유배, 6번의 파직, 결국엔 사지가 찢겨 죽는 거열형을 당하는데, 영화에서는 파란만장한 생애 중 한 단면인 도승지 역할로 한정하여 전체 줄거리를 엮고 있다. 임진 정유 두 전쟁 이후,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선이란 인물을 통해 한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한편, 리더로서 가져야 할 진정한 가치와 덕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재위 15년에 유배 19년, 고교 역사 교사들이 뽑은 ‘재평가가 필요한 역사 인물 1위’에 올라 있는 비운의 군주 광해군. 승하 후, 종묘에 신위를 올릴 때 ‘유공왈조(有功曰祖) 유덕왈종(有德曰宗)’ 즉, “공(功)이 있는 임금을 조(祖)라 하고 덕(德)이 있는 임금을 종(宗)이라 한다”는 묘호의 원칙이 있었음에도 묘호를 추증받지 못했으니 역사는 역시 승자의 기록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게 물었다. 왜였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광해군의 시문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 그 등식이 성립되지 못한 것은 과문한 탓이기도 하고, 선입견 탓이기도 하겠다. 영화 보따리를 풀기 전에 광해군의 시를 찾아볼 생각을 했으니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炎風吹雨過城頭(염풍취우과성두)

    瘴氣薰蒸百尺樓(장기훈증백척루)

    滄海怒濤來薄暮(창해노도래박모)

    碧山愁色送淸秋(벽산수색송청추)

    歸心每結王孫艸(귀심매결왕손초)

    客夢頻驚帝子洲(객몽빈경제자주)

    故國興亡消息斷(고국흥망소식단)

    烟波江上臥孤舟(연파강상와고주)

    한더위 바람 비 몰아 성 위로 지나가니

    후덥지근한 장독 기운이 백 척이나 높구나

    푸른 바다 성난 파도에 어둠이 깃드는데

    푸른 산 근심어린 기운은 가을을 전송하네

    돌아가고픈 마음 늘 왕손초에 맺혀 있고

    나그네 꿈엔 제자주(서울)가 자주 보이네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지고

    안개 낀 파도 위 외로운 배 누워 있네.

    이덕무의 ‘청비록(淸脾錄)’에 실린 시다. 광해군이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될 때에 지었다고 한다. 제주 귀양 시 4년 동안 집 밖 출입이 금지된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유배형을 살았다. 광해군의 시를 말하다 보니 당시는 조선을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들이 살다 간 시기였다. 자타공인 천재 시인 허균과 난설헌, 그들의 스승 이달, 비교 불가인 황진이, 황진이가 스승으로 사모했던 서경덕, 허균과 시문의 친구로 사귄 부안기생 매창 등이 그들이었으니 격변의 시대가 시인을 낳는다는 말은 사실로 보인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15일간의 왕 노릇, 그 경계의 줄타기

    2012년 9월 13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로, 관객 수 1232만 명을 기록했다. 그해 제49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하여 역대 최다인 15개 부문을 수상했다. 광해군 치세기 당시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진 15일 동안, 광해군으로 위장한 대역이 조선을 다스렸다는 가상의 시간을 그려낸 팩션 영화로, 러닝타임은 131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광해군은 어느 날 독이 든 음식을 먹고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임금의 유고로 인해 도승지 허균은 공백을 메울 대역으로 일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하선을 부른다. 목소리며 걸음걸이 등을 익힌 후, 위험천만한 임금 노릇이 시작된다.

    여러 에피소드도 가미된다. 매화틀에 앉은 장면이 대표적이다. 임금은 매화틀이란 똥요강에 앉아 변을 보았다. 하지만, 이는 미처 배우지 못한 일, 똥 마려워 당황하는 소리가 들리자 문이 열린다. 뒤처리를 위해 비단을 든 궁녀와 “경하드리옵니다”라고 외치는 사월(심은경 분)과 여러 궁녀들. 가져온 세숫물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하선. 이렇듯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코미디적 요소를 잘 버무려 놓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저잣거리의 한낱 만담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천민 하선의 임금 놀이는 쏘아 놓은 화살처럼 절정을 향해 간다. 중전(한효주 분)과 은밀하고 중차대한 약속을 하고, 심지어 대동법을 시행하라며 신하들과 첨예한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난폭했던 실제 왕과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달라진 왕의 모습에 궁정이 조금씩 술렁이고, 점점 왕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모습에 도승지 허균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광대와 임금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 관객은 저절로 감정이입된다. 비록 며칠간의 임금 노릇이라 하더라도 임금 자리 역시 제 사람 하나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외로운 자리이며, 하기 나름으로 백성을 울게도, 웃게도 하는 광대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관객은 이병헌의 천연덕스러운 1인 2역 연기에 일희일비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이 영화가 천만 영화 반열에 든 이유는 무엇일까? 추창민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바탕 위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으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가면서 광해와 하선이란 두 인물의 성격과 감정선의 변화는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군주가 된 하선은 천민으로서 겪은 세상의 체험, 그 뼈저린 교훈을 백성을 위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허균은 그런 하선의 왕노릇을 일견 지원하고 제어한다. 조 내관 역의 장광 역시 경계의 줄을 타는 하선 곁에서 진심으로 보좌하는 모습을 베테랑다운 연기로 무게감을 더한다. 한효주도 중전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사람 여인으로서의 고뇌와 자신을 둘러싼 권력 구도의 현실,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복잡미묘한 이면을 섬세히 표현한다.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새드 엔딩으로 마감된다. 있을 수 없는 왕실의 비밀을 아는 사람을 살려 보낼 수는 없다. 아무리 영화라 해도 그 정도라면 주인공은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허균과 도부장(김인권 분)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하선을 발굴하고 왕을 연기하게 하고, 그 마지막을 책임지는 허균의 인간적인 모습이 잘 그려진 부분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왕? 난 싫소. 내 꿈은 내가 꾸겠소.

    이 시대에 광해군은 왜 재평가되고 있는가. 영화는 그 해답의 한 일면을 말해주기도 한다. 비록 옛이야기라 하나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는 영원하다. 하선의 변신을 통해 리더로서 가져야 할 진정한 가치와 덕목은 언제나 유효하다.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은 소통능력과 포용력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이 시대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아 느낀 감동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영화 속엔 명대사도 많다.

    “적당히들 하시오. 명황제가 그리 좋으시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시던가.”

    광해군은 전쟁을 몸소 겪었기에 명나라와 후금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신하들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명나라에 대한 사대정책을 포기하고 후금을 지지한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었고, 후금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런 등거리 외교를 이 대사 한마디로 녹여내고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컷.

    “왕의 임무는 무엇인가. 백성을 위해 살고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다.”

    이 대사는 개혁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하자는 언쟁 중에 한 말이다. 특산물 대신 쌀로 통일해 납부하는 것이 대동법의 골자였다. 백성의 부담과 방납의 폐해를 줄이자는 백성을 위한 마음이었다.

    실제 광해군은 두 관점이 현저히 대비되는 군주이다. 임란 중 ‘분조’를 이끌고 전쟁을 진두지휘한 왕실의 책임자였고, 다시 정식 임금이 되어 고혈에 신음하는 백성의 편에 섰으며, 명국과 후금 사이에서 명분에 치우치지 않은 채 실리를 택한 외교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에는 상궁 김개시를 비롯한 측근 정치에 휘말려 혜안을 잃게 되었고, 급기야 인목대비 집안을 멸문시켰으며 어린 영창대군을 유배 보내고 죽였다. 이로써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폐모살제(廢母殺弟)의 만행을 일삼은 폭군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또한, 지나치게 궁궐공사에 집착하여 엄청난 원성을 샀다. 결국, 재위 15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1641년 67세로 유배지에서 한 많은 생을 끝낸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촬영지 밀양 월연정.

    오늘 월연정에서 17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았다. 이곳 장면은 단 한 컷에 불과하다. 광해군이 궁을 벗어나 잠시 몸을 피한 곳, 그 한 컷을 위해 많은 스태프를 이끌고 이곳까지 왔다니! 작품 완성도를 위한 감독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와지붕과 담벼락, 배롱나무가 잘 어울리는 월연정이 고즈넉하다.


    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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