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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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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김홍섭의 좌충우돌 문화 유산 읽기] (5) 창원 주남돌다리와 북부리 팽나무

미스터리… 세월 건너는 돌다리, 아름드리… 전설 우거진 팽나무

  • 기사입력 : 2024-05-16 20: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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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남저수지 인근 주천강 가로질러 서 있는 돌다리
    4개 교각에 넓적하고 우람한 바위 4개 ‘불가사의’
    조선시대·고려시대 축조설 혼재… 상상력 자극

    높이 16m·둘레 6.8m·수령 500년 된 천연기념물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로 인기
    시원한 낙동강변 조망… 신라시대 전설도 내려와



    건축문화에 있어 다리는 중요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길 따라 움직인다. 강이나 계곡에서 길이 끊어질 때 다리가 없다면 잠시 갈 수 있는 거리를 상당시간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어린 시절 개천을 지나 학교를 다녔던 우리 또래에게는 개천의 범람으로 학교 가지 못해 낭패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물류의 시간절약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다리의 중요성은 훨씬 커진다. 창원에 있지만 창원사람도 잘 모르는 주남저수지 근처 주천강의 옛 조선(고려) 돌다리를 다녀왔다.

    주남저수지 인근 가술리 590번지에 창원 주천강을 가로질러 서 있는 주남돌다리./김홍섭 소설가/
    주남저수지 인근 가술리 590번지에 창원 주천강을 가로질러 서 있는 주남돌다리./김홍섭 소설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5호 주남돌다리

    창원 주천강은 창원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주남저수지와 낙동강을 연결하는 강으로, 강폭이 좁다 보니 막상 보면 강이라기보다는 개천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엄연히 ‘주천강’이다. 주천강은 창원의 대산면과 동읍 경계로 흐른다. 주남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곳 가술리 590번지에는 묘하게 생긴 돌다리 하나가 흡사 헤라클레스처럼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주천강을 가로질러 서 있다. 묘하다는 것은, 모양도 그렇지만 건축방식도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는 돌다리의 전체 모양은 가운데가 높고 양쪽 가장자리가 낮아지는 무지개다리 형식이다. 상판을 지탱하는 중앙 4개의 교각은 상당히 무게가 나갈 듯한 바위를 쌓아 만들었다. 가운데 두 개는 높고 양쪽 두 개의 교각은 낮다. 그 위에 4개의 넓적하고 우람한 바위를 얹어 완성한 모양이다. 강 양쪽 마을 주민들이 인근 정병산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게 조선시대였다는 설과, 800여 년 전이라는 설이 혼재한다. 800년 전이면 고려시대다. 당시에 중장비가 있을 리도 없고, 코끼리 정도면 몰라도 소달구지로 끌고 오기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저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를 그 당시 어떻게 가져왔는지 또 저 무거운 바위를 어떻게 움직여 다리를 축조할 수 있었는지 불가사의했다. 지금의 모습은 강의 범람으로 한 번 무너진 것을 창원시에서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주남돌다리.
    주남돌다리.

    무지개다리는 전형적으로 사찰에서 많이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에서는 다리가 중생들에게 베풀 수 있는 업적으로 본다. 그래서 다리를 축조하는 것이 ‘현세에 대한 공덕을 쌓는 일’로 생각한다. 다리는 불편한 지형을 극복하는 도구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현세와 피안의 세계를 연결하는 의미도 가진다. 굳이 무지개모양의 다리를 축조하는 이유다. 아치형으로 건축되는 무지개다리는 정교하고 숙련된 기술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당한 자본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부자들은 공덕을 쌓기 위해 무지개다리 건축자금을 시주했다. 사찰에서 짓는 무지개다리의 기술자는 대부분 승려들이었다. 그리고 인근 주민들의 노동력이 결합되어 건축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현세에 공덕을 쌓는다는 명분은, 부의 재분배와 무지개다리 너머 피안의 세계를 꿈꾸는 염원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 해소되는 절묘한 방법이었다.

    창원 주남돌다리는 무지개다리 형식을 취했지만 그리 정교한 축조법은 아니다. 그러나 고인돌 형식으로 축조해낸 이 돌다리는 정교한 무지개다리보다도 더 매력이 있다. 마치 몇 개의 고인돌을 연결해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영국의 스톤헨지나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처럼, 다리라기보다는 어떤 집단의 갈망에 의해 축조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보고 있으면 끝없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그래서 신선함마저 느끼게 한다. 실제로 스톤헨지는 고대 앵글로색슨어로 ‘공중에 매달린 바윗돌’이라는 의미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어머니는 1858년 영국여행에서 스톤헨지를 보고 돌아와 말한다. “다른 세계에서 온 환영처럼 탁 트인 황량한 땅에서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정체 모를 유적을 보고 우리는 고요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필자 역시 허공에 매달린 거대한 돌들을 보며 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그 느낌이 즐거웠다.

    주남돌다리.
    주남돌다리.

    ◇돌다리의 기원은 징검다리

    돌다리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는 징검다리다. 얕은 개천을 건널 때는 쉽게 만들 수 있어 아마도 전 세계 징검다리가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징검다리’의 어원은 다리를 건널 때 나오는 특유의 몸짓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전적으로 ‘징검징검’은 바느질을 할 때 촘촘하지 않고 띄엄띄엄 꿰매는 모습이거나 발을 멀찍멀찍 떼어놓으며 걷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필자에게 징검다리는 소설 속에서 읽었던 한 장면이 기억의 한 모퉁이에 액자화되어 걸려 있다. 교과서에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를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시골소년이 처음 만난 ‘목덜미가 마냥 흰’ 서울소녀. 여기서부터 가슴이 울렁거린다. 시골소년과 서울소녀의 풋풋한 감성이 얽히면서 두 사람의 ‘밀당’이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서울 소녀가 한 수 위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선 징검다리가 필수인데 어느 날부터 소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물장난한다. 소년은 개울을 건너지도 못하고 난처하다. 필자 역시 예전 이 장면을 여러 번 읽었던 대목이다. 우리 아파트 옆 개울에도 징검다리가 있어 건널 때 가끔은 ‘소나기’를 기억하며 혼자 미소 짓기도 했다. 다만 그때의 소년 소녀는 사라지고 이미 구부정한 허리의 동네노인이 되어 휘청거리며 위태롭게 건넌다는 게 다를 뿐.

    징검다리가 원시적 다리이기는 하지만 그냥 대충 놓지는 않는다. 도시계획을 전공한 이영천 기술사의 저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에 따르면 징검다리는 세굴(洗掘) 방지가 중요하다. 물이 흐르면서 강바닥이 파이게 되는데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을 놓을 자리에 작은 자갈을 깔면 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무른 땅은 침하가 일어나는데 모래와 자갈을 깔아주는 것으로 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특이한 모습의 주남돌다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다리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어느 한 지점으로 가는 시간의 문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거대한 돌의 모양, 축조법이 별로 정교하지 않아 엉성해 보이면서도 정교하게 맞물린 모양이 상상력을 한없이 자극한다. 수천 년 전 석기시대에 이 땅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귀향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만든 구조물 아닐까? 하는 상상에 빠져들면서 다리를 건널지 말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자폐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기 시작한 북부리 팽나무./김홍섭 소설가/
    자폐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기 시작한 북부리 팽나무./김홍섭 소설가/

    ◇천연기념물 북부리 팽나무

    주남돌다리에서 6㎞ 남짓. 시골길을 차로 7~8분 정도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북부리 팽나무에 닿는다. 일명 ‘우영우 팽나무’로 불린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면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촬영지’라는 벽 글씨가 보인다. 수령 약 500년. 키가 16m. 둘레가 6.8m로, 첫눈에 우람하다는 인상이다. 자폐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덕분에 마을 당제와 결합하여 2022년 10월 0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팽나무로는 경북 예천 금남리 팽나무, 전북 고창 수동리 팽나무에 이어 세 번째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다. 주변이 낙동강 수변구역이라 눈에 가리는 것이 없고 초원지대가 넓게 펼쳐져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초원지대의 끝에 낙동강이 흐르고 그 건너가 밀양이다.

    팽나무는 곰솔과 함께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나무로 유명하다. 내륙지방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바닷가에서 심고 가꾸는데 가장 적합하다. 우리나라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산림청의 관리를 받고 있는 고목나무 1만3000여 그루 중 팽나무는 약 10퍼센트인 1200본으로, 느티나무 7100본 다음으로 많다. 이 중 대부분은 전남, 경남, 제주에서 자란다.

    북부리 팽나무
    북부리 팽나무

    팽나무 이름 유래가 재미있다. 봄에 팽나무 꽃이 지면 초록색 작고 동그란 열매가 열린다. 놀이기구가 별로 없던 그 시절 아이들은 팽나무 열매가 딱 맞게 들어갈 만한 대나무 대롱을 만든다. 콩알만 한 굵기의 열매를 대나무 대롱의 앞뒤로 한 알씩 넣은 다음, 뒤쪽에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탁 때리면 공기의 압축으로 앞의 열매가 탁 튀어나간다. ‘팽총’이다. 팽총의 총알 ‘팽’이 열린다고 해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

    팽나무 열매는 가을에 들면서 주황색으로 익는다. 열매 가운데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지만 주위는 달콤한 육질로 싸여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팽나무 열매는 과실로도 먹지만 씨앗으로 기름을 짜서 식용한다. 그리고 고목에서는 팽이버섯이 자란다.

    북부리 팽나무
    북부리 팽나무

    팽나무에는 신라시대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마을에 두 낭자가 살고 있었다. 한동네에 함께 살면서 친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다. 자라서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두 낭자에게는 사랑하는 총각이 있었다. 총각도 같은 마을 사람이다. 두 낭자가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총각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알게 된다. 둘은 충격을 받았다. 더 큰 충격은 총각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두 낭자는 서로 부둥켜 안고 마을 연못에 몸을 던진다. 얼마 후 두 낭자가 몸을 던진 곳에는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랐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죽은 줄만 알았던 총각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낭자가 자신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총각도 실의에 잠겨 같은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총각이 몸을 던진 자리에서는 팽나무가 자랐다. 그리고 두 그루의 등나무 넝쿨은 팽나무를 감고 올라가며 자랐다. 팽나무와 등나무의 전설이다. 엄연히 내려오는 전설이라 소개는 했지만 어째 실수하는 기분이 든다. 한 남자에 두 여자라니. 전설이기에 망정이지 소설이었다면 작가는 여성들에게 멱살 잡혔을 게 분명하다.

    팽나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 수변구역 초원이 시원하게 한눈에 든다. 초원의 한가운데로 자전거길이 휘어지며 달리고 있다.

    김홍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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