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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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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진해 '웅천도요지'를 가다

  • 기사입력 : 2006-08-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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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국 외면에 국보급 분청사기 '산산조각'

    한여름 뙤약볕이 맹위를 떨치는 8월 초. 진해 웅천차사발 전승보존회 조용호 사무국장과 함께 진해시 웅천동 두동마을 보배산 기슭에 있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60호 ‘웅천도요지(熊川陶窯址)를 찾았다.

    소나기 빗줄기와 같은 땀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여름 우거진 수풀과 거미줄을 헤치며 도요지를 향하는 길. 해마다 이곳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조 국장조차 몇 번이고 멈춰서서 풀숲에 가려진 길을 찾아야만 했다.

    돈에 눈먼 도굴꾼과 제 나라 물건 가져가듯 분청사기를 마구 훔쳐간 일본인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찾기 힘든 울창한 이 길에 안도해야 하는 것일까?

    오랜 장맛비로 토사가 흘러내려 곳곳이 진흙탕이 됐지만 그 때문에 400년 전 조선의 사기공들이 빚었던 분청사기의 파편들을 곳곳에서 볼수 있었다.
    해발 200m쯤 됐을까?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경남도기념물 제160호를 알리는 표지판이 아니였다면 이 곳이 400년 전 각종 분청사기를 생산한 도요지였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97년 1월30일 도기념물로 지정됐지만 지금의 도요지는 철저하게 외면당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남해안관광벨트사업의 하나로 국비를 합쳐 83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지원받아 주변 1만평을 복원하는 ‘웅천도요지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곳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완전 복원돼 지금쯤 진해시민을 비롯한 도민은 물론이고 외국관광객까지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도자기문화를 만끽해야 하는데….

    두동요지(頭洞窯址)로 알려진 이곳은 면적 약 1만㎡의 가마터로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곳이며. 임진왜란 이전 대일무역항으로 번성했던 제포항을 통해 수출품인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마터 지표면과 파괴된 가마에서 출토되는 도자기 조각은 사발·대접·접시류를 비롯해 귀얄문과 덤벙문 분청사기 등으로 16세기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변해가는 마지막 단계까지 자기를 생산하던 곳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교토 다이도큐샤 고호안에 소장돼 있는 일본 국보 ‘기자에몬’의 시원지로 이곳을 지목하고 있으며. 실제 기자에몬의 시원지로 여긴 많은 일본인들이 마구잡이로 약탈해간 곳이기도 하다.

    2001년 이곳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한 경남발전연구원 김지태 연구원은 “기자에몬과의 연관성을 떠나서 이곳은 16세기경 조선자기 발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며 “남해안 여러 곳에서 가마터가 발견되지만 6기의 가마터가 발견된 두동요지같은 예는 없다”고 말했다.

    진해시와 경제자유구역청. 동아대가 10년을 허비하고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캠퍼스 조성사업을 벌이는 동안에도 이곳의 가치를 알고 묵묵히 지켜가는 이들이 있다. 진해 웅천차사발 전승보존회다.

    보존회는 지난 2000년부터 자비를 들여 이곳에서 진해 웅천 막사발 축제와 함께 웅천 선조도공 추모제를 열어오고 있으며. 조상들이 끌려갔다는 일본 히라토섬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보존회 조용호 사무국장은 “남의 나라에서는 국보로 떠받드는 문화유산을 이렇게 방치하는 나라가 어디 있냐”며 “벌써 복원돼 시민들이 누려야 할 이곳에서 행정은 손을 놓고 대학이란 곳은 10년째 돌만 캐고 있다”고 분개했다.

    조 국장은 “보존회는 많은 이들에게 우리 지역에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올해도 웅천 막사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행정당국과 동아대는 더 이상 이곳을 폐허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상호기자 cha83@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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