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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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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39) 남강⑫-산청군 삼장면~시천면

지리산 내원사 계곡 지나 남명 조식 흔적 찾기
삼장면 들어서면 계림숲·송정숲·대포숲

  • 기사입력 : 2008-10-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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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내원사 계곡

    지리산 계곡을 벗어나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바라보니 온 산은 만산홍엽으로 물들고 있었다. 농부들이 여름 내 땀 흘려 가꾼 계단식 다랑이 논에서 벼를 추수하는 모습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지리산 대원계곡을 따라오던 원시의 숲들이 가뭄으로 말라가더니 한줄기 흠뻑 뿌린 비에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나고 있었다. 산들은 이내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듯 곱게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영양분이 부족한 혹독한 겨울을 넘기기 위해 스스로 수족을 잘라내는 아픔일 수도 있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평촌리에서 강을 옆에 두고 도로 공사가 한창인 군도 59번을 따라 시천면 방향으로 여정을 잡았다.

    △삼장면의 숲= 맑은 물빛 평촌천을 만나 삼장면 평촌리에서 밤머리재 방향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홍예다리를 건너면 작은 계림 숲이 있다.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좋은 데다 맑고 풍부한 수량으로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제법 붐비는 숨겨진 비경이다. 다시 오던 길을 내려서니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마을길에 추수를 끝낸 벼와 통통하게 익은 고추를 멍석에 말리는 모습에서 고향의 향수가 묻어난다.

    추수를 끝낸 논둑을 따라 강을 따라 내려서니 계림 숲보다 약간 넓어 보이는 송정 숲이 반겨준다. 숲 주변이 모래땅으로 물이 잘 빠지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여름휴가 장소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소나무 숲 앞쪽에 물길을 막아 놓은 보(湺)가 있어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딱 좋은 천연 수영장이다. 휴일을 맞아 한 가족이 모여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거창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곳과 낮은 곳에서 배려하고 양보하며 찾는 마음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와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서 내원사로 발길을 재촉했다.

    내원사는 평촌천과 삼장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대포 숲을 지나 내원사 계곡을 오 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내원사 들머리에 있는 대포 숲도 물이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아우라지를 만드는 강변에 울창한 숲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

    내원사 3층 석탑

    △내원사= 아스팔트 포장이 된 도로를 따라 내원사 계곡을 옆에 두고 산자락을 돌아가면 내원사가 숲 속에 있다. 내원사는 지리산 국사봉(해발 1083m)에서 발원한 계곡과 써리봉 아래 무제치기 폭포에서 내린 물줄기가 넓고 긴 장당골 계곡을 타고 흐르는 삼장천이 만나는 곳에 있다. 절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곡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건너야 하는데 군사 요새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내원사의 옛이름은 덕산사로 신라 최고의 귀족 출신인 무열왕의 후손인 무염국사(801~888)에 의해 창건됐다. 내원사는 500여 년 전 화재로 소실됐다가 1959년 중건됐다.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번째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절집 마당이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는 산사의 강아지들이 양지 바른 요사채 툇마루 밑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었다.

    원래 내원사에는 암자가 많았다고 한다. 내원 골짜기 물을 따라 올라가면 금장암과 해회암이 왼편에 있었고 오른쪽에는 석상암, 백왕암, 도솔암, 내완암이 있었다고 전한다. 내원사에는 다소 이름이 생소한 문화재가 1점 있다. 보물 제1021호 석남암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지리산 중턱 석남암사지에 있던 것을 내원사 비로전으로 옮겨 놓은 석불이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다. 대좌 속에서 사리기가 발견되어 766년 신라 때 조성된 비로자나불임이 밝혀졌다.

    보물로 지정된 내원사 3층 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다. 절집 주변은 한국전쟁으로 참화를 당했으나 보물 2점은 보존돼 있다. 3층 석탑은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서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긴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불에 타서 심하게 손상된 모습이 세월의 뒤안길로 씻겨 갈 만도 한데 아직도 군데군데 생채기가 있다.

    오색단풍이 내리는 내원사를 뒤로 하고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을 찾아 덕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덕천서원

    △남명 조식의 유적= 옛 이름이 덕산인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이르면 ‘지리산만큼이나 무거워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없던’ 고고한 선비 남명 조식(1501~1572)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남명에 대한 이야기는 구태여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합천면 삼가 태생인 선생은 회갑을 맞은 나이에 지리산 가까운 곳에 찾아들어 10년 동안 선비로서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자신의 학문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남명은 절제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경의(敬義)를 중시했다. 방울을 차고 다니며 자신을 깨우치고 칼을 머리맡에 두고 의리의 결단을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 시대에 본받아야 할 진정한 스승의 사표다.

    남명 유적은 덕천서원과 산천재, 남명묘소, 근래에 세워진 남명기념관 등이 있다.

    시천면 소재지 근방에 서는 5일장은 시대에 밀려 많이 퇴색했지만 활기가 넘친다. 봄이면 산나물, 가을이면 산열매, 곶감 등이 나오며 방앗간에서 나오는 구수한 참기름 냄새가 바쁜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중산리 가는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면 덕천서원 입구에 홍살문과 남명이 심었다는 400년이 넘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마음씨 좋은 수문장처럼 나그네를 반겨 맞는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잔디를 곱게 단장한 마당을 중심으로 동·서재가 마주보고 있고 정면에 난간을 두른 강당이 있다. 내삼문 뒤쪽에는 숭덕사가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온 앞 강가에 남명선생 생전부터 있었다는 세심정이 있다. 혼탁한 마음을 이곳에서 씻고 선생의 고고한 인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덕천서원에서 강을 따라 내려서면 시천면 사리에 산천재가 있고 길 건너에 남명 기념관이 있다. 남명 기념관에서는 남명의 체취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산천재는 남명이 61세 되던 해에 지은 서재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경륜을 펼쳤던 곳이다.

    좁은 산길을 따라 기념관 뒤편으로 오르면 산등성이 덕천강이 훤히 보이는 곳에 남명의 묘소가 있다. 매년 10월이면 서사극 공연, 의병출정식, 학술대회, 선비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로 남명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남명선비문화축제가 열린다.

    (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남명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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