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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정일근(시인)

  • 기사입력 : 2009-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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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7월의 내 적바림에 ‘통영 여행’이 다섯 번씩이나 기록되어 있다. 그중 세 번은 부산·울산지역 독자들과 함께하는 ‘통영문학기행’이다. 나머지 두 번은 지금 열리고 있는 ‘2009 통영문학제’와 관련한 통영 나들이다.

    헤아려 보니 나는 해마다 예닐곱 번씩은 통영을 찾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문학과 관련된 행사나 일이 내 통영 여행의 이유다. 그처럼 내게 통영은 문학과 떼어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문학의 고장이다. 하지만 어디 문학을 이유로 통영을 찾는 사람이 나뿐만이겠는가.

    더운 여름날 나들이는 출발하기도 전에 사람을 지치게 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의 통영 나들이는 그렇지 않다. 통영 여행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그 설렘 속에는 고성을 지나 광도면 어귀쯤 도착하면 가슴이 열리도록 물씬 풍겨오는 바다 내음이 있다. 남망산 공원에 올라가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통영 바다를 바라볼 때 쿵쿵쿵 뛰는 가슴이 있다.

    바다의 빛깔이 늘 다르듯 몇 번을 찾아와도, 몇 십번을 찾아와도 그 바다처럼 늘 새로운 곳이 통영이다. 때로는 코발트블루가 나를 환호하게 하고 때로는 불타는 저녁놀이 나를 쓸쓸함에 젖게 한다. 나는 통영의 모든 빛깔이 늘 새로워서 좋다. 젊은 한때는 아예 통영에서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통영 어디서든 푸른 바다가 보인다. 통영 바다에서 바라보는 언덕 위의 지붕 낮은 집들은 누구에게나 고향의 옛집처럼 정답기만 하다. 그곳에서 한국문학이 사랑하는 시인이며 소설가가 태어났고 살았다.

    청마 유치환 시인(1908~1967)과 대여 김춘수 시인(1922~2004), 소설가 박경리(1926~2008)와 김용익(1920~1995),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1920~2004) 선생이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생가가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통영은 한국 현대문학의 산실인 것이다.

    한국 문학사에도 통영처럼 찬란한 문학인이 동시에 태어난 곳이 없다. 그것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문단을 대표하며 ‘통영의 힘’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아마 세계 어디에도 이와 같은 경우를 가진 문학의 고장은 없을 것이다.

    통영에는 청마 시인을 기리는 ‘청마의 거리’가 있고 ‘청마문학관’이 있다. 대여 시인은 문학관 건립에 앞서 ‘유물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박경리와 김용익 소설가는 통영에 생의 마침표로 찍은 ‘묘소’가 있다. 시조시인 초정은 ‘김상옥 거리’와 ‘초정 시비’를 가지고 있다.

    사학자 유홍준이 전남 강진을 ‘남도답사의 1번지’라고 소개했듯이, 나는 통영을 ‘문학기행의 1번지’라고 소개한다. 작은 항구도시이지만 통영은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기라성 같은 문학인들의 고향이이며, 그들의 숨소리를 지금도 들을 수 있는 문학현장이다. 또한 그들의 문학작품이 만드는 통영 바다 같은 깊고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내게 통영이 ‘문학기행의 1번지’인 이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렬한 통영의 흡인력은 위대한 문학가를 배출시킨 도시 자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다와 도시가 둘이 아니고, 거기다 문학까지 한 몸이 되는 이 예항(藝港)은 누구든 한 번 사랑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하게 되고 만다.

    7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간 통영에서 ‘2009통영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다섯 분의 작고 문학인들을 기리는 다양한 문학행사가 통영을 ‘문학의 땅’임을 깊이 느끼게 한다. 특히 이번 통영문학제에서는 영어로 쓴 단편소설 ‘꽃신’이 미국 교과서에 실렸던 김용익 선생을 집중 조명했는데, ‘꽃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도 통영 출신이라는 것에 놀랐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백석 시인이 1930년대 3편의 ‘통영’ 연작시를 썼다. 그 시들 중에 통영을 예찬한 다음 구절이 있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통영문학제라는 ‘문학의 바다’를 펼치고 있는, 지금 통영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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