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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소설 ‘토지’를 걷자 - 정일근 (시인)

  • 기사입력 : 2009-08-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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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적으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여행도 도보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제주를 걷는 ‘올레길’의 대성공으로 ‘길’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웃 부산에서도 ‘그린 웨이’(Green Way)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동해 먼 섬인 울릉도에도 7코스의 걷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길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걷는다. 걷는 길이 새로운 문화혁명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세계도 마찬가지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걸 말하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800km를 하루 수십km씩 한 달 넘게 걸어가는 힘든 길이다. 중세 때부터 만들어진 이 길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인이 모여들어 걷고 있다.

    걷는 자에게 ‘왜 걷는가?’를 묻는다면 실례다. 길이 있기에 걷고, 걷는 것이 행복해서 걷는다. 걸으며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과 싸우고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한다. 문제는 길이다. 걷고 싶은 길이다.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고 두 발로만 걷고 싶은 길이다. 고속, 초고속으로 치닫는 속도의 시간을 벗어던지고 천천히 천천히 걷고 싶은 길이다.

    경남지역도 많은 길을 가지고 있다. 남해바다의 바닷길, 지리산의 산길, 낙동강의 물길…. 그러나 그 길들의 대부분은 쉽게 걷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숨은 길’일 뿐이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는 사통팔달로 만들며 사람이 걷는 길을 만드는 데는 인색한 것이 행정이다. 예전에는 사람의 마음이 길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행정이 변해야 사람의 길이 만들어진다.

    최근 하동군과 하동문인협회가 ‘박경리 토지길’을 만들었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중심으로 소설 속의 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길이며 소설을 따라가는 이야기길이다.

    ‘박경리 토지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35개의 길을 신청 받아 7곳의 길을 선정해 지원하는 도보 중심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중의 하나다. 이 길이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길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 길은 소설 속의 무대를 재현한 평사리 최참판댁, 평사리문학관과 함께 또 하나의 문학 명소로 소설 ‘토지’의 위대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평사리가 어떤 곳인가?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쓰는 동안에는 하동 평사리에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토지문학제’ 참석차 평사리에 처음 온 선생이 눈물을 쏟은 곳이 아닌가. 평사리에 자신이 세운 토지의 기둥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 곳이 아닌가.

    ‘박경리 토지길’은 섬진강 평사리공원에서 화개장터까지 18km의 1코스와 화개장터에서 국사암까지 13km의 2코스 길로 잘 꾸며져 있다.

    1코스인 ‘문화체험 1번지 소설 토지의 무대 따라 걷기’는 섬진강 평사리공원~평사리들판~동정호~고소성~최참판댁~조부잣집~취간림~악양루~섬진강변~화개장터를 지나는데 약 5시간이 소요된다. 이 길에는 대나무길과 녹차밭길의 트레킹 코스도 만들어져 있다.

    2코스인 ‘산과 강, 인간이 만든 눈 속에 꽃이 핀 고장 화개 길 걷기’는 화개장터~십리벚꽃길(혼례길)~차(茶)시배지~쌍계석문바위~쌍계사~불일폭포~국사암으로 이어지는데 약 4시간이 소요된다.

    벌써 입추다. 올 가을에도 황금들판으로 변할 평사리 일대에 소설 ‘토지’를 발로 읽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도보여행자들로 붐빌 사유의 발길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강원도의 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남에도 힘이 있다. 그 힘은 문학 속에 숨어 있다. 그 문학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가득한 걷는 길들이 우리 지역 곳곳에 많이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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