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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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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票는 던져야 효력이 있다- 이선호(논설고문)

자격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면
자격 없는 자를 제거하는 것도 방법

  • 기사입력 : 2010-05-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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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입후보자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어떡하죠?”, 답= “그 가운데 조금 낫다거나, 이리저리 따져보고 택해야지요”, 문= “그래도 영 내키지 않을 땐 기권하는 게 맞지 않나요?”, 답=“…”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지만 곳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이다. 8차례 기표를 해야 하는 이번 선거판에선 더 심하다. 그렇다고 기권도 최소한의 권리라며 맞장구를 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자칫 이를 부추기면 선거 방해 혐의로 몰릴 수도 있다. 정치교과서대로 투표는 민주국민의 의무라고 했다간 현문우답(賢問愚答)의 꼴이 된다.

    그래서 국가에 따라서는 투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가 안될 때는 선거를 다시 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종다수 최고득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로선 기권은 투표율에 영향이 있을 뿐 당락과는 무관하다. 지난 지방선거까지 자치단체장은 후보가 1명이라도 투표자 수의 3분의 1 이상을 득표해야 당선이 결정됐으나 이번 선거에선 이마저도 없앴다. 다만 기권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현행 국민투표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성립되기 때문에 분명한 반대 의사 표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기권의 실상이 이러니 자격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면 자격 없는 자를 제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제거해야 할 후보는 돈을 많이 쓴다거나 관권의 도움을 받는 자가 1순위가 될 것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후보도 비겁하다. 물론 이 과정은 유권자의 ‘투표함’에서 결정된다. 여기서 한 표(票)의 따끔한 맛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한 표의 값어치는 산술상 단순 비용만 해도 법정 홍보물과 투표 관리비, 투표용지비 등 중앙선관위에서 쓰는 경비와 각 후보 진영의 선거비용, 그리고 투표일을 휴일로 지정해 생긴 기업손실분 등을 합치면 적지 않다. 여기에다 지역의 살림꾼을 선출하는 중요성, 잘못 뽑았을 때 입을 피해액까지 더하면 그 값어치는 엄청나다.

    한 표의 위력은 183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 때 있은 에피소드가 종종 회자된다. 당시 현역 주지사였던 에드워드 에버렛은 투표 참여를 독려하느라 깜박 잊고 투표 마감 시간을 넘겼다. 개표 결과 한 표 차로 졌다. 자신의 표 때문에 대통령까지 꿈꿀 수 있는 주지사 자리를 놓친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 표가 위력을 발휘한 사례는 많다. 1649년 영국왕 찰스 1세는 한 표 때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한 표 차로 나치당을 장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 표로 인해 희비가 엇갈린 적이 있다. 지난 2002년 원주시 개운동 기초의원 선거에서 이강부 후보가 하정균 후보를 한 표 차로 따돌리는 등 당시 8개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단 한 표가 당락을 갈랐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동 기초의원 선거에선 두 후보의 표가 똑같이 나와 연장자가 당선되기도 했다.

    정당은 지지해도 나온 공천자를 보면 꼴도 보기 싫다거나, 당은 시원찮은데 나온 후보가 믿음직한 경우라도 투표장을 외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홍보물로만 접한 생판 모르는 인물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 선거의 장(場)은 특정 입후보자나 특정 정당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짧게는 4년, 나아가 우리의 자식과 후대를 위한 장이다. 그동안 이것저것 챙겨 두었던 ‘사실’들을 잊어선 안될 일이다.

    아열대나 열대 지방에선 정치가 못마땅한데도 폭발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건망증’ 때문이라고 한다. 날씨가 더워 움직이기 귀찮은 탓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요즘 날씨가 수상하긴 해도 6월 첫째 수요일인 2일은 투표 나들이에 적당하다는 예보다. 행여 ‘건망증’이 있다면 다시 살펴보시길 권한다. ‘표(票)’는 ‘던져야(投)’ 효력을 발휘한다.

    이선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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