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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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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늙어 가는 사회’의 속도를 늦추자- 이선호(논설고문)

‘베이비붐 세대’ 직장 은퇴 이후 일자리 만들어 재고용해야

  • 기사입력 : 2011-03-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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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미래’란 말이 있다. ‘작은 거인’이나 ‘점보 새우’와 같이 어법상으론 모순이지만 여기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과거가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미래로 가는 길은 과거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은 폐기될 수밖에 없고 나이든 세대들의 위상 또한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현상이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로화(早老化)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도입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의미한다.

    50대 중반 연령층에 몰려 있는 이들은 자식들의 교육과 결혼을 책임지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끼인 세대’이기도 하다. 또 한국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주도해 왔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선에서 정작 자신을 돌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불쌍한 세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들의 수가 700만명이 넘고 전체 인구의 14%에 이른다.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카이세대(1947~49년 출생)의 수가 인구의 5.4%인 것에 비해 덩치가 훨씬 크다. 이들이 앞으로 10년도 채 안돼 고령층에 편입된다. 유엔이 구분한 고령화 사회의 거대집단이 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들의 미래가 한국사회 미래의 축소판이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내놓은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려했던 대로 노후 준비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돈은 평균 월 17만2000원 정도에 그치고 있고 절반 정도는 아예 은퇴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은퇴 이후 수입원도 불안정하다. 하지만 이들은 역시 현대사의 질곡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주역답다. 은퇴 후 삶에 대해 건강·여가·경제적인 면에서 낙관하는 비율이 60%대에 달했다. 은퇴 생활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도 돈이 아니었다. 은퇴한 뒤 ‘어떻게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염려했다.

    또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초고령 사회 서울,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정책보고서도 희망적이다. ‘베이비붐 세대’ 10명 중 1명이 노후생활 책임자로 ‘자기 자신’을 꼽았다.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인 세대와는 달리 고학력·전문직이며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력을 보유한 집단으로서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은퇴 뒤를 혼자서 헤쳐 나가기엔 벅차다. 기대 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앞으로 살아야 할 세월이 경제활동인구로 살아온 세월 만큼 남은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이들이 준비가 전혀 안 된 터에 이미 조기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개인의 위기를 넘어 사회적 위기를 예고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일자리다. 물론 청년들의 일자리를 넘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나이 든 세대가 주변화되고 청년들이 주류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서는 브리지 잡(Bridge Job, 징검다리 직업)이 이미 대안으로 부상한 지 오래됐다. 이는 직장에서 물러난 뒤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10년 정도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의 ‘자투리 일자리’가 늘어나면 고령화가 ‘문제’가 아닌 ‘기회’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우리 사회의 시니어 파워로 등장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뒷방 늙은이로 내몰리는 것은 고역이다. 사회적으로도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사장시키는 것은 불행이자 큰 손실이다. 이들이 소비주체이면서 생산주체로서 ‘신(新)’ 노년시대를 이끌 수 있을지는 우리 사회가 여하히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답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늙어 가는 사회’의 속도도 늦출 수 있다.

    이선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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