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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홍정숙 한국장기요양기관협회 경남지부장

“치매 어르신들도 진심 어린 사랑은 다 안답니다”

  • 기사입력 : 2013-06-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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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정숙 한국장기요양기관협회 경남지부장이 김해 행복요양원에서 한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모님이 바빠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키워준 할머니에게 꼭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결혼 후 시집살이로 바빴고, 그러던 중 할머니는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여행을 보내드리지 못한 게 가슴속 한(恨)이 됐다.

    치매 앓는 어르신들만 보면 눈물이 나려 한다. 할머니가 자꾸 생각나서다. 그래서 모든 어르신들에게 살갑게 대해드리고 싶고, 내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옆에서 지켜드리고 싶었다.

    한국장기요양기관협회 경남지부장을 맡고 있는 홍정숙(56) 행복요양원(김해시 동상동) 원장은 치매를 앓거나 중풍을 앓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사설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헌신할 생각이다.



    치매 노인들과 동거동락 10년째

    홍 지부장이 운영하고 있는 요양원에는 치매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치매 환자를 둔 가정이라면 잘 안다.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홍 지부장도 치매의 심각성을 몰랐다.

    “할머니는 9년, 시어머니는 7년 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올케가 모셨지만, 시어머니는 제가 모시고 살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치매의 심각성이 이 정도인 줄 몰랐어요.”

    2004년 요양원 개원 첫 입소자로 치매 노인이 들어왔다. 정말 치매가 심했다. 홍 지부장은 그날 이후 밤낮으로 잠을 설칠 정도였다.

    “치매 환자는 보통사람하고 달라요. 첫 번째 어르신은 말의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보통사람들은 불가능하죠. 24시간 치매 어르신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머리가 아플 거예요. 치매 어르신이 계속 들어왔고, 같이 생활하자 한 달 동안 잠을 못 잤죠. 정말 치매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무섭구나. 나도 다음에 치매를 앓을 수 있는데 내가 만일 그렇게 됐을 때를 상상해보면 더 심란해지더라고요.”

    치매 노인들과 생활하면서 다친 적도 많았다. 기저귀를 채우거나 목욕을 시키려고 하면 4~5명의 요양사들이 달려들어야 할 만큼 곤혹스럽다.

    “어린이, 노인들에 대한 인권이 높아졌죠? 어떤 요양원을 보면 우리가 봐도 심하다 할 정도로 나쁜 곳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몇몇 개인시설에 불과해요. 요양사들을 보면 많이 맞고 살아요. 여기 팀장만도 어르신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어요. 저도 팔, 다리를 어르신들에게 물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죠. 정말 봉사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루라도 다리 뻗고 자 본 적이 없어요.”



    전업주부에서 요양시설 원장으로

    홍 지부장은 왜 이런 힘든 일을 택했을까. 주변의 만류도 많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이 길을 고집했다.

    요양원을 차리려 하자 선배, 친구, 후배들의 쓴소리도 많았다. 왜 굳이 요양원이냐는 반응이었다. “김해시청에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첫 마디가 왜 고생스런 요양원을 하려고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너무 부끄러웠답니다. 사설 요양시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요양원 하면 외부에서 나쁘게 보는 분들이 많았고, 특히 개인시설 요양원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너무 안 좋았으니까요.”

    요양원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데는 치매 노인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어서다. 자신의 할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인 셈이다.

    “어릴 때 저를 부모 대신 키워준 할머니에게 제주도 관광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치매로 돌아가셨고, 약속은 지키지 못했죠. 항상 마음에 한이 됐어요. 고아원을 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접고 요양원을 하기로 했죠. 힘 있을 때까지 어르신들하고 같이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했죠.”

    그는 결혼 후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뒤늦게 부산여자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요양시설을 차릴 수 있는 자격증도 취득했다.



    정신은 없어도 사랑은 다 알아요

    홍 지부장이 10년째 치매 노인들과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치매 노인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행동은 나빠도 정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좋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항상 여리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치매가 아무리 심하고 정신이 없어도 자기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어르신들은 딱 알아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오면 얼굴 표정부터 변하고 행동이 과격해져요. 자기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가식으로 대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어르신들 얼굴에 웃음이 환해져요. 말도 잘 따라주고요.”

    그래서 그는 치매 노인들을 항상 진심으로 대한다. 자신의 친할아버지·할머니처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치매 노인들의 좋은 모습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듯하다. “치매가 가족들에게 무섭지만, 치매 어르신들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아세요? 두 분이서 대화하는 걸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많아요. 치매 어르신들의 나쁜 모습은 금방 잊게 된답니다.”

    홍 지부장의 요양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다. 6층짜리 건물 중 3~4개 층을 쓰고 있다. 요양원 외적 분위기가 조금 딱딱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는 번드레한 환경보다 마음으로 돌봐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치매 어르신들에게 환경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시설 번드레하게 짓고 화단 만들어 놓으면 뭐합니까. 그렇게 한다고 어르신들에게 혜택이 가는 게 아니에요. 좋은 시설 만들고 좋은 음식 많이 주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요양사들에게 항상 진심 어린 사랑으로 대하라고 강조해요. 가장 힘든 일이지만 그게 요양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정든 어르신 돌아가실 땐…

    홍 지부장은 자신의 요양원에서 어르신이 세상을 떠날 때면 가슴이 엔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속담처럼 어르신들과 부대끼며 든 정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죽어도 제 옆에서 죽을 거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자기 아들딸보다 저를 더 좋아하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마음이 어떻겠어요. 당연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죠. 그동안 든 정을 버릴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그는 보호자들에게 병원을 권장하지 않는다. 병원으로 들어가서 치매 노인들이 더 고통받는 걸 원하지 않는 마음에서이다.

    “돌아가실 때가 되면 주로 합병증이 와요. 급성폐렴, 심부전증 등, 또 괜찮았던 분이 돌아가실 때는 항상 골절을 입어요. 이분들을 병원으로 데려가면 의사들은 죽어가는 노인에 엑스레이 촬영부터 하고 콧구멍으로 음식을 섭취하게 해요. 얼마나 고통이겠어요. 그런 고통을 줄 것인지 편안하게 자연사로 돌아가시게 할 것인지를 보호자들이 잘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사설 요양원에 대한 인식 제발 바뀌었으면

    홍 지부장은 2011년부터 장기요양기관협회 경남지부장을 맡았다. 지부장으로서 그의 바람은 외부인들의 개인시설 요양원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지부장으로 있는 동안 설정한 그의 목표이다. 개인시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냉소적인 탓에 더 나은 봉사자 역할을 하는 데 제약이 많다.

    “사람들이 개인요양시설을 볼 때 ‘돈 많이 벌겠다’는 말을 합니다. 또 무슨 사건이 터지면 꼭 개인요양시설이라서 그렇다는 인식이 많아요. 입소자들을 ‘돈벌이’로 생각한다는 거겠죠. 하지만 이는 정말 일부 사람의 잘못일 뿐이에요. 열심히 노력하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 자꾸 손가락질 받는 게 속상해요. 개인시설 요양원 원장들에게는 잘해도, 못해도 모두 ‘죄인’이라는 말들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녀요. 법인시설보다 개인시설은 원장이 오히려 더 애착을 가지고 보살피는 데 말이죠.”

    무엇보다 자원봉사자들의 인식 변화를 부탁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전화를 해 첫 마디가 무료냐, 유료냐 물어요. 법인이 아니고 개인시설이라고 하면 전화를 뚝 끊어버려요. 법인·개인 모두 정부 80%와 본인부담 20%로 입소비가 정해져 있고 똑같이 어르신들을 돌보는 곳인데, 개인시설에는 봉사자들이 오려고 하질 않아요. 제발 봉사자분들의 인식이 바뀌길 바라요. 그리고 저도 지부장을 맡은 동안 어르신을 모시는 게 차원이 다르구나 느낄 수 있도록 개인시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헌신할 생각이에요.”


    글= 김호철 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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