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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함양읍 삼수대 마을, 역사기념비 세우자 - 서희원(사회2부 부장)

  • 기사입력 : 2014-01-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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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의 토박이 성씨로 박씨, 여씨, 오씨 3성이 있다. 함양에 본을 둔 이들 3개 성씨에 대해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역사기념비를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3성씨를 주제로 역사유적지를 개발하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함양지역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함양의 북서쪽에 자리한 천령봉 기슭, 함양읍 삼삼리에는 삼수대(三樹臺, 三休洞)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시대에 함양 박씨, 함양 여씨, 함양 오씨 3성 시조인 박선(朴善), 여림청(呂林淸) 오광휘(吳光輝) 등 삼장군은 서로 동서지간으로 삼동서가 이곳에 모여 쉬면서 시국을 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 앞에 넓은 반석의 대가 있는데 그 이름을 이두대(里杜臺)라 부르며, 여기에서 삼장군이 휴식을 취했다고 해 삼수대 또는 삼휴동이라 불린다.

    이 마을이 형성된 시기와 3성씨가 정착한 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 초기나 고려중기에 이미 마을이 형성됐다는 게 향토사학자들의 추측이다.

    함양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아들이었던 8대군파 중에서 속함대군의 후손이며, 중시조는 고려의 예부상서 박선(朴善)이다. 이에 대해 함양 박씨 종중에서는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이 8대군을 분봉할 때, 셋째아들 박언신(朴彦信)을 속함(함양의 옛 이름)대군으로 봉함으로써’ 본관을 얻었으나, ‘문헌이 유실돼 선계를 밝힐 수 없어 고려조 예부상서를 지내고 함양군(咸陽郡)에 봉해진 박선을 시조로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양 여씨는 신라말기부터 조선까지 우리 민족과 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온 명문혈통으로, 시조 휘(諱) 어매(御梅)가 877년경 중국 당나라의 황소의 난을 피해 내동(來東)해 함양을 세거지(世居地)로 삼고 창성(創姓)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함양 오씨 시조 오광휘(吳光輝)는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 오현필(吳賢弼·보성 오씨의 시조)의 둘째 아들 오량(吳良)의 4대손으로 고려시대 좌복야를 지내고, 흥위위상장군으로서 거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광국일등공신 (推忠靖難匡國一等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함양부원군에 봉해져 3성의 토성으로 이뤄졌다.

    이에 함양을 대표하는 토박이 3성의 역사기념비를 삼휴동(삼휴대)에 세워 그들의 역사를 정립, 함양의 자랑스런 뿌리를 찾아 역사적인 자존심과 위상을 높여 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뜻있는 군민들의 중론이다.

    특히 함양군민의 축제인 함양물레방아축제 기간에 함양의 토성 3성에 대한 뿌리찾기 학술대회를 열고 족보·유물 전시회, 역사의 현장 답사 등의 행사를 하면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외지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종친회 참여다. 함양군은 종친회의 발전이 함양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고리를 마련해 3개 성씨 문중이 축제에 참여하면 후손들이나 주민들이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동질성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물레방아축제 때 삼휴동 뒷산 천령산에서 채화를 시작으로 고유제를 지내고 있어 3성 문중이 고유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어떨는지.

    서희원 사회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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