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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우리에게 주는 경책-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 기사입력 : 2023-02-15 19: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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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칠의 영웅적 지도력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화는 1940년 5월, 굴욕적인 평화냐 명예로운 투쟁이냐를 놓고 현실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가장 암울한 시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바다 건너 프랑스 땅 덩케르크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30만 명이 졸지에 독일군에 포위당해 사활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처칠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일시적인 평화를 위해, 믿을 수 없는 나치주의와는 절대 협상할 수 없다”고 강변했지만, 경쟁자인 핼리팩스 외무장관은 “전쟁은 절대 안 된다”며 무솔리니의 중재로 히틀러와 평화협상을 하라고 윽박질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기실 처칠을 더욱 압박한 건 적진에 고립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병사들의 목숨이었다. 의회 의원들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으로 항전보다는 평화협상에 더 마음이 쏠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자는 주장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칠은 흔들렸다.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수락하고자 의회에 가면서 일부러 지하철을 탄다.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비굴한 협상보다는 결사 항전을 원하고 있었다. “히틀러와 타협해 노예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결의를 보이는가 하면, 한 시민이 읊은 로마 시인의 시구(詩句) “이 땅의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언젠가 오나니. 나는 가장 명예롭게 죽겠노라, 두려움에 용감히 맞서!”라는 구절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하철에서 만난 국민들은 처칠이 어떤 결정을 할지에 대한 답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결국, 처칠은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진다. 그러자 정치권은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지만, 처칠은 자기 확신과 강한 의지로 의회를 설득한다. “전쟁에 진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무릎 꿇고 굴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호소하자 정적들의 비난과 비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못마땅해하던 조지 6세 국왕도 처칠의 집에 찾아와 히틀러가 겁을 낼 정도의 총리라면 나도 지지하겠다고 말을 한다. 처칠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위해 가능한 모든 민간인 선박에 대해 동원령을 내린다.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나 독일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삼게 된다. 처칠의 냉철한 판단과 뚝심이 영국과 유럽을 구한 것이다.

    평화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그러나 굴욕적으로 얻은 평화는 항구적이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말해주는 이 영화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관련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의 V를 내보이며 국민을 단합시켜 나라를 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리더십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면, 나는 그런 지도자에게 신념과 용기를 주고 눈앞의 위기 상황에 맞서 단호한 의지와 결기를 보여준 지하철 안 영국 국민들의 태도가 솔직히 더 부러웠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정세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기시감 때문일까!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평화도 지킬 수 없다”고 한 처칠의 경책이 오늘따라 더욱 크게 귓전을 울린다.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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