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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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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민들레 302호- 황숙자

  • 기사입력 : 2023-05-25 0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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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관을 들어서면 오래 보았는데도

    낯설은 기억이 홀씨로 흩날리고 있다


    젖은 침대같이 하루가 무겁다

    -드시고 싶은 거는요

    -그만하면 되었다

    사랑을 기록하는 문진방식은 언제나 한결같다


    한 생애가 온종일 천장에 별을 심는다

    자식들 눈물만큼 남은 숨

    은하를 드나들며 블랙홀을 점치는 저 눈이 더욱 흐리다


    건널 다리가 안개 속에서 흐밋하다

    연의 경계에서 마음을 다잡는 일

    천천히 건너는 발뒤꿈치가 아리고 있다.


    ☞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하는 ‘민들레’ 302호입니다. 치유와 재생 그리고 변화와 회춘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부디 일어나 집으로 가시자고 소망해 보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후후’ 분 적이 없는데 민들레 홑씨처럼 흩어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일곱 밤 자고 또 올게요. 드시고 싶은 거는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만하면 되었다”며 얼른 집에 가라는 듯 손등을 꿈적거리십니다. 문을 닫고 나올 때마다 마지막이 될까 봐 무섭습니다. 복도를 서성이다 침상에 누운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마음이 무너진다는 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일 것입니다. 남아 있던 눈물이 가슴에서 요동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곳곳에 요양원이 민들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 땅 어머니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천천히 발뒤꿈치를 드는 곳에 우리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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