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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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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파문을 씹는 몽돌- 정영선

  • 기사입력 : 2023-06-22 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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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에서 몸을 다진 몽돌은 파도를 먹고 산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다갈다갈 파문을 씹는 어금니 소리

    거친 파도엔 닥다그르 배꼽 웃음 웃어젖히는

    뼛속 깊이 응축된 닥닥한 자존이

    세파에 부대끼며 모서리가 닳아

    잘 다듬어진 목청으로 걸어 나온다

    천 년을 쏟아내고도 짱짱하게 살아 있는 소리의 몸

    밤이면 둥근 세월 포개 누운 몽돌밭에

    달빛이 자늑자늑 뭉툭해진 세월의 귀를 쓰다듬는다

    ☞ 다갈다갈 닥다그르……, 몽돌을 감고 도는 나직한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 아득해집니다. 달빛 쏟아지는 밤이면 수면에 이는 물결 사이로 한없이 마음을 뒤척이곤 합니다. 저들의 언어를 죄다 해독할 순 없지만 천 년을 살아 온 몽돌의 체온이 눈물겹습니다. 밀려오는 파도에 다갈다갈 때론 닥다그르 휩쓸리며 끝없이 파문을 먹고 산 까닭입니다.

    뭍에서의 사람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삶의 무게가 있기 마련이어서 밀려갔다가 자신의 무게만큼 다시 돌아오는 너울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지구와 함께 거뜬히 한 바퀴 구르는 중입니다.

    한 여름 밤, 몽돌밭에 와서 알았습니다. 몽돌은 몽돌과 어우러져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그러니 사람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구가 둥근 이유를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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