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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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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수연산방에서 - 「무서록」을 읽다 -고두현

  • 기사입력 : 2023-06-29 08: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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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향루에 앉아 솔잎차를 마시며

    삼 면 유리창을 차례대로 세어본다

    한 면에 네 개씩 모두 열두 짝이다


    해 저문 뒤

    「무서록」을 거꾸로 읽는다


    세상일에 순서가 따로 있겠는가

    저 밝은 달빛이 그대와 나

    누굴 먼저 비추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누구 마음 먼저 기울었는지

    무슨 상관 있으랴


    집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에 앉은 동산도 두 팔 감았다 풀었다

    밤새도록 사이좋게 노니는데


    시작 끝 따로없는

    열두 폭 병풍처럼 우리 삶의 높낮이나

    살고 죽는 것 또한

    순서 없이 읽는 사람이

    먼 훗날 또 있으리라.


    ☞ 수연산방은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살던 서울 성북동 옛집이다. 이 수연산방에서 시인은 ‘무서록’을 읽고 있다. ‘무서록’은 이태준의 수필집으로 순서 없이 엮은 글이라 하여 붙인 제목이다.

    시인은 ‘무서록’을 거꾸로 읽으며 “세상일에 순서가 따로 있겠는가” 묻고 있다. “저 밝은 달빛이 그대와 나/ 누굴 먼저 비추는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누구 마음 먼저 기울었는지/ 무슨 상관 있으랴” 하고.

    이태준이 살던 옛집에서 이태준의 마음을 읽으며 “살고 죽는 것 또한/ 순서 없이 읽는 사람이/ 먼 훗날 또 있으리라.” 라고 시인은 말한다. 아득하다. -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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