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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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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우는 바람 - 진효정

  • 기사입력 : 2023-07-20 08: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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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이 울고 있었다

    창문을 마구 흔들면서 울고 있었다

    들어줄 귀를 찾는 것 같았다

    꽉 다문 유리창을 열어

    말해 봐

    뭔 말이든 해 봐

    다 들어줄게

    귀를 활짝 열어 속삭였지만

    바람의 말은 제 몸속에 둘둘 말려있었다

    밤새 울다 그치다 울다 그치다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울음은 그치고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구겨진 빨래가 젖은 얼굴로 포개져 있었다

    ☞바람이 분다. 직선으로 때론 나선형으로 불며 허공의 깊이를 짚는가 하면 넓이를 측정하고는 이내 종적을 감춰버린다. 바람이 분다. 7월의 장맛비를 앞세워 뭔가 말하려는 듯하다가 곧장 입을 닫아버린다. 안주하지 않은 바람의 열정은 때론 태풍을 동반하여 울부짖기도 한다. 허공은 늘 울음으로 얼룩져 있는 바람의 집결지다.

    바람이 운다. 유리창을 두드리며 온몸으로 목메어 운다. 창문을 열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말해 봐/ 뭔 말이든 해 봐/ 다 들어줄게’. 우는 바람의 이력을 열람해 보려 하지만 바람은 선뜻 그 속내를 시인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곳곳에 젖은 얼굴로 포개져 있을 뿐이다. 한 줄 쓰다 말고 또 한 줄 적다 버린 바람의 문장들. 그 바람의 나라에 시인이 산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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