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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슈퍼 엘니뇨와 농부의 역설- 이강서(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 기사입력 : 2023-09-03 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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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022년 농가소득에 대한 통계결과가 발표됐다. 2021년 역대 최고치인 4778만원을 기록했던 농가소득이 작년에는 3.4% 감소한 4615만원이었다. 농가소득이 3.4% 감소됐다는 수치만 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이 보인다. 우선 농가소득과 농업소득은 용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보자.

    농가소득은 농업소득과 농업외소득, 이전소득, 비경상소득의 합으로 구성되는데 농업인의 기본적인 소득인 농업소득은 전년대비 무려 26.8%나 감소한 949만원으로 농가소득 4615만원 중 27.1% 밖에는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식숙박업을 겸업하면서 얻은 겸업소득과 농가의 다른 가구원들이 근로소득 등으로 벌어들인 농업외소득, 그리고 정부의 공익직불금 지급 등에 따른 이전소득이 무려 농가소득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농업외소득은 오히려 농업소득 949만원보다 두 배가량 높은 1920만원이라고 한다. 농가의 소득이 더 이상 애써 기른 농산물 판매만으로는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경영비 증가가 농업소득의 감소 원인이라지만 27년 가까이 1000만원 초반을 유지하던 농업소득이 작년에는 1000만원도 안되는 949만원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이처럼 언뜻 보면 비슷한 단어로 보이는 ‘농업소득’과 ‘농가소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냉탕과 온탕처럼 온도 차이가 극심하게 느껴진다.

    경제학에는 ‘농부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풍년이 들면 오히려 농부의 소득이 감소하고 흉년이 들면 농부의 소득이 증가하는 역설적인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농부의 역설은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탄력성이 매우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소비자의 소득이 높아졌다고 필수재인 밥을 더 먹는 것이 아니라 늘 일정한 농산물을 소비하기에 수요가 비탄력적이고, 또한 농산물 가격이 올랐다고 재배까지 많은 기간이 소요되는 농산물을 한꺼번에 더 많이 공급할 수 없고, 농산물의 공급마저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풍년이 들어 농산물 공급이 많아지면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고 결국 농부의 수입은 급감한다. 반대로 흉년이 들어 농산물 공급이 줄어들면 농산물 가격은 폭등해 농부의 수입은 증가하게 된다. 풍년임에도 불구하고 수확하지도 않은 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자주 보게 되는 이유다.

    지난 5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3개월동안 평년대비 2도 이상 높게 지속되는 역대 최고의 슈퍼 엘니뇨 발생 확률이 80% 정도라고 예보했다. 슈퍼 엘니뇨는 농산물, 특히 곡물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발된 애그플레이션이 점차 잦아드는 시기에 물가상승의 재점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올해 예상대로 슈퍼 엘니뇨가 발생한다면 흉년이 들어 농산물 공급은 줄어들고 농부의 농업소득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농업소득만큼 농가경영비도 일정 부분 증가할 것이라 내년 농가소득의 증감에 대한 방향성은 예측하기 어렵다. 온 세상이 디지털 확산과 AI로 예측 가능한 미래생활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유독 농업만은 아직까지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놓는 것은 오늘도 삼시세끼 농산물을 소비하는 우리 모두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강서(농협중앙회 창녕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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