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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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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거꾸로 매달린 것들에게선 맑은 소리가 난다- 이미화

  • 기사입력 : 2023-10-19 0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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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모든 종들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연화사 범종도 그렇고 옥봉성당 꼭대기 종도 그렇고 관봉마을 교회종도 그렇다 거꾸로 매달려 있다

    우주의 모든 애기들도 이 세상에 올 때 거꾸로 매달려서 온다

    세상의 모든 열매도 거꾸로 매달려서 열린다

    저 뜨거운 태양도

    저 밤하늘의 별들도 거꾸로 매달려서

    아름다운 것이다

    딸아

    네가 열 달 동안 내 배 안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건

    엄마인 내게 맑은 소리 들려주고 싶어서였단다


    ☞ 견자(見者)의 눈을 가진 시인은 또 다른 세계의 감식가다. 우주라는 공간에 표면장력처럼 매달려 있는 모든 대상을 거시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얼마큼 살아야, 얼마나 가슴 깊이 와 닿아야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양과 밤하늘의 별들도 거꾸로 매달려 있단 걸, 거꾸로 매달린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더욱 놀라운 것은 자궁의 태아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까닭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맑은 소릴 들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들도 열매도 거꾸로 매달렸다는 것이다.

    비 갠 어느 저녁,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을 들여다본다. 방울마다 매달려 있는 나, 우리는 그렇게 매달려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들리시는가! -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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