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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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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풍수적 이치

  • 기사입력 : 2023-11-17 09: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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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재 민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된 외암민속마을이 있다. 마을은 북쪽의 설화산(雪華山)을 최고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지형을 갖추었다. 또한 송악면 강당리에서 발원한 지방하천인 외암천이 마을을 두르고 흘러가므로 강한 지기(地氣·땅기운)를 품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조선 명종 때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여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동족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주산(主山·뒷산)인 설화산은 그 형상이 붓끝처럼 생겨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불리며, 마을사람들은 학자와 문필가가 많이 배출된 것이 문필봉의 힘찬 기운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 오랫동안 세찬 비바람에 흙은 날아가고 정상 부분에 바위만 남아 뾰족한 형상이 된 산을 문필봉이라 하는데, 필자는 바위의 강력한 기운이 마을에 뻗쳐 인재를 배출하게 됐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설화산에 ‘칠승팔장(七丞八將·정승 일곱과 장수 여덟)’이 나오는 명당이 있다고 알려져 암장(暗葬·남몰래 시신을 파묻음)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설화산 아래 외암(外岩)마을은 민속마을로 널리 알려졌지만, 본래는 ‘우뚝 솟은 바위’라는 뜻의 외암(巍巖)으로 이곳에 살았던 이간(李柬)의 호라고 한다. 외암의 한자 표기는 후에 ‘외암(外岩)’으로 바뀌었다. 마을 입구는 수구(水口·기운이 드나드는 통로)라 한다. 수구가 너무 넓으면 생기가 흩어져 기(氣)가 빠진 마을이 되는데, 이중환(조선 후기의 실학자)의 택리지에도 “수구는 작은 배 한 척이 지나다닐 정도면 족하다”고 할 정도로 수구는 좁아야함을 강조했다. 마을 입구 좌측은 동수비보(洞藪裨補·숲을 조성해 바람을 막아 생기를 보존함)를 했으며, 우측은 연꽃으로 뒤덮인 밭을 만들어 입구를 최대한 좁힘으로써 생기를 품은 온화한 곳이 되게 했다. 마을의 좌청룡(좌측산)은 튼실하면서 겹겹이 있어 벼슬이 높은 인물이 나옴을 암시하지만 우백호(우측산)는 산이 거의 없는 평지에 가까워 찬바람인 북서풍이 치기에 이를 막기 위해 조산(造山·인공적으로 산을 쌓아 만듦)을 구축하고, 송림(松林·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조성해 비보(裨補·부족한 곳을 메움)하였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참판댁과 건재고택이 위치하고 있다. 참판댁은 마을 전부를 관장하는 속칭 ‘대감터’라는 곳에 있으며, 건재고택은 마을의 중심부에 있다. 참판댁은 참판을 지낸 이정렬이 고종으로부터 자금을 하사받아 지었다. 마을 동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참판댁은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기상이 웅장할 뿐만 아니라 터의 기운 또한 장대하다. 마을에는 참판댁 후손이 조성한 조상묘와 조선후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간의 묘가 있다. 참판댁의 조상묘는 설화산의 용맥(龍脈·산줄기)이 직접 뻗어 내려온 곳에 위치하고 있고, 땅속이 고운 흙(미세토)이어서 생기가 응집된 진혈(眞穴)이다. 이간 묘 또한 지맥(地脈)에 순행하면서 근본을 갖추었지만 묘가 있는 땅속의 흙에 약간의 잔돌이 섞여있기에 무해지지(無害之地·득도 없고 해도 없는 땅)에 해당한다. 따라서 참판댁 묘가 이간 묘보다 상급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외암마을에서 정기(精氣)가 가장 힘차게 솟구치는 곳은 단연 외암의 후손인 건재 이상익이 건립한 건재고택이다. 건재고택은 많은 부분에서 풍수적인 고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솟을대문 바깥에 있는 노거수(수령이 오래된 나무)인 은행나무는 집안으로 불어닥치는 흉한 바람과 살기(殺氣)를 막고 있으며, 튀어나온 담장과 가랍집(외거 노비가 거주하는 집)은 좌우측의 바람을 차폐시킨다. 부녀자의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내외담’을 두었으며, 안채는 외부의 살기가 침입하지 않도록 튼‘ㅁ’자형으로 조성했다. 결과적으로 설화산의 정기가 뻗어와 안채를 감싸면서 사랑채에 최종 안착을 해 생기로운 집이 됐다.

    (사주명리·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mail : ju46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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