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30일 (화)
전체메뉴

[촉석루] 다양성, 다름의 해방일지- 원은희(시인·성재일기간행위원회 회장)

  • 기사입력 : 2023-11-22 21:16:11
  •   

  • 저마다의 색깔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로수들을 보면 서로 다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상의 모든 꽃이나 나무들이 같은 모양, 같은 색이라면 무슨 조화와 아름다움이 있을까? 자연은 다양성의 소중함을 늘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독 다름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다르게 생각하는 차이, 다른 성향을 ‘빨갱이’ 취급하며 양분화 놀이에 함몰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자전 소설을 쓴 정지아 작가의 소설이다. 격동의 시대를 빨치산 활동이라는 이력으로 이 땅에 살아남은 낙인찍힌 사람들과 그 반대편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만난다. 그들은 신념이 다른 다양한 삶도 결국은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이념의 억압에서 놓여나 진정한 해방과 화해의 순간을 맞는다. 작가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이데올로기의 실타래를 문학을 통해 풀어주었다. 그래서 문학의 힘은 그 어떤 물리적 힘보다 크고 세다.

    일제 치하에서도 부당한 억압에 굴종하지 않고 문학을 통해 저항한 이들이 있었다. 그 중심에 한국문학사에 우뚝한 우리 지역의 권환 시인이 있다. 그는 핍박받는 노동자와 농민, 어린이들의 삶을 대변하고 해방된 조국을 위해 문학으로 항거했다. 일본에 대항할 총칼의 적중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론에 카프가 있었을 뿐, 월북하거나 공산 체제를 동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덧씌워진 이데올로기의 벽은 너무 오래도록 그를 이념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오로지 자신의 피리를 맘껏 부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인,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몸으로 시 쓰며 저항했던 앞선 지식인이었던 권환은 금기어처럼 잠시 잊혀져야만 했다.

    이제 진전면 오서리에는 해마다 권환 시인의 올곧은 문학정신을 기리는 사람들이 모여 조촐하게나마 권환문학제를 연다. 시인의 생가터, 유택, 그가 수학했던 경행재 등을 보존하며 그를 흠모하는 발길이 20년을 이어가고 있다. 잠시 잊혔던 이름을 부르며 오서리는 ‘시인의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원은희(시인·성재일기간행위원회 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