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30일 (화)
전체메뉴

[촉석루] 상동 자기가마터와 김해다완- 김재홍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 기사입력 : 2023-11-23 20:35:58
  •   
  • 김재홍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김해 지역의 가마터와 관련된 조선시대 문헌 기록은 앞선 칼럼에서 소개한 ‘감물야촌’에 자기소가 위치한다는 기록 외에도 ‘경국대전’ 외공장조를 통해 6명의 사기장이 김해에 배치됐음을 알 수 있는데, 경국대전이 작성된 15세기 중반에 집중적으로 자기가 제작됐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김해 자기와 관련된 기록은 조선과 일본의 교린 관계를 기록한 외교서인 ‘변례집요’에서 확인할 수 있다. ‘1611년 3월 왜인이 서계를 지참하고 다기보아, 와기의 제작을 요청하여 김해의 도공에게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김해지역에서 도자기를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왜의 요청으로 다기를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확인되는 내용은 1918년 일본의 도예가 마시미즈 조로쿠 2세가 한국과 중국의 도요지를 답사하고 작성한 ‘도기’에서 ‘김해군 상동면에 옛 고려 때 가마가 있고 백자를 생산하였는데, 이것은 즉 고쇼마루와 긴카이다.’ 라는 기록이다. 이 내용은 견문록에 가까워 오류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1910년대 상동면에 백자가마가 있었음을 인지하는 점과 ‘변례집요’와 함께 김해다완이 이 지역에서 생산됐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상동 백자가마터와 묵방리 30번지 백자가마터의 발굴조사에서는 김해다완과 직접적으로 연결 지을 수 있는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발굴조사가 완료된 묵방리 10번지 백자가마터에서 분청사기 1점이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 묵방리 10번지 백자가마터는 17세기 전~중반 백자를 제작한 가마로 ‘변례집요’의 기록과 동 시기에 운영됐는데, 이 분청사기가 주문다완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 유물은 10번지 가마터에서 출토된 2만여 점의 백자편을 모두 정리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확인됐으며, 발굴조사 과정에서 작은 편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리한 조사원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단 한 점의 유물이지만 이것을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향후 인근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김해다완과 상동의 자기가마터 사이의 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김재홍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부 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