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의료칼럼] 기억은 잃어도 인생을 잃는 것은 아니다

원연희 (창녕군치매전담요양원 사무국장·사회복지사)

  • 기사입력 : 2023-11-27 08:10:17
  •   

  • 통계청 ‘2023년 고령자 통계’ 발표에 따르면 올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95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8.4%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대로라면 2025년에는 65세 노인 인구 비중이 20.6%를 기록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에 따른 치매 환자도 꾸준한 증가세다.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의 10.38%를 치매 환자로 추정하고 있을 만큼 치매는 국가 명운(命運)이 달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하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제도의 사각지대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여전히 산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초단체인 창녕군이 앞서서 치매 전담 요양원을 설립, 군민은 물론 도내 노인 부양 문제에 대한 시책을 강화하고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전담 요양원 구성원들은 웬만한 인내심과 수양을 기반으로 두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입사 초기 수탁기관인 희연의 ‘모든 이의 삶에 대한 존경’과 치매전담요양원의 정체성인 ‘입소자 정서 안정’, ‘부양 부담 완화’라는 의미를 상투적인 구호로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개원 2년여가 흐른 지금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스로 진정한 노인 돌봄의 의미를 깨달았고, 요양원 구성원들의 존재 이유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일례로 10년 이상 자택에서 가족의 돌봄을 받던 90세 치매 환자가 이상 언행이 심해지면서 마음의 상처와 가족과의 불화로 요양원을 찾았다. 여느 환자들이 그러하듯 이번 입소자 역시 초반에는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집에 가겠다”며 식음을 전폐했고, 수시로 문 앞을 서성이며 요양원을 벗어나려 하는 행동 탓에 직원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입소 최초 2~3주 동안 ‘어르신의 개별적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돌봄을 제공하라’는 요양원 기본 방침에 따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분석했다.

    아울러 가족들로부터 입소자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 직원들이 공유했고, 식성에 맞는 식단 제공 등 맞춤형 돌봄으로 입소자의 적응을 끌어냈다. 입소자는 “이제 집보다 이곳이 편하다”며 만족감을 나타냈고, 가장 많은 면회 횟수를 기록할 정도로 가족과의 관계도 개선됐다. 치매 돌봄 현장에서 보면 입소자 본인은 답답함과 불만이 가득하고, 가족들은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부담을 호소하는 게 부지기수다. 하지만 재활, 복지, 영양, 간호, 요양 등 돌봄 직종의 존재 이유는 입소자의 정서 안정과 가족들의 부양 부담을 더는 일인 만큼 비록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게 됐다.

    한편, 희연은 창녕군치매전담 요양원의 고유 기능과 전문성 확대를 위해 ‘개방형 치매전담 시설’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이미 전문 의료진은 물론 IT 관계자, 안전 분야 전문가 등의 조언을 통해 시설의 밑그림 작업을 마친 상태다. 핵심은 보편적 삶의 지원을 위해 모든 출입문을 개방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개선해 정원을 거닐며 휴식하는 환경 조성이다. 들판을 훤히 내다보며 농부들의 일상과 계절 감각을 스스로 일깨우는 여건 등 말 그대로 치매 환자들의 일상을 오롯이 인정하는 특별한 공간 마련이다. 안전사고 등 현실적 난제와 감성적 사고의 균형추 맞추기에 부담이 있을 법하지만, 사회복지법인 희연의 확고한 의지에 감동을 받았다.

    원연희 (창녕군치매전담요양원 사무국장·사회복지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