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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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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정장 한 벌- 김진희

  • 기사입력 : 2023-12-07 08: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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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무늬 티셔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중심에서 멀어져 배경이면 어떠냐고

    하늘색 스란치마가 방 모서리에 걸려있다


    한 땀 한 땀 꿰맨 하루 허물처럼 벗어놓고

    치마폭에 숨긴 말들 꽃잎 가만 들춰보는

    오래된 안부 같은 옷 터진 솔기 꿰맨다


    손가락 붕대 감고 부풀어 오른 통점

    수증기 펄펄 날리며 하루를 다림질하여

    희망도 샘플처럼 걸친 마네킹의 정장 한 벌


    ☞ 오늘은 대설이다. 큰눈이 온다는,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과 함께 앙상한 가로수를 보면서 겨울을 체감하게 된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세력 좋은 노거수도 화려한 단풍으로 시선을 붙잡을 때가 있었지만 중심에서 멀어져 배경이 될 때도 있다. 예상 못 한 가뭄이나 태풍으로 곁가지에 상처 입고 뿌리가 뽑히기도 한다.

    누가 정한 규칙인지 모르지만 ‘꽃무늬 티셔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중심에서 멀어져 배경’이 되고 ‘터진 솔기’ 꿰매는 상처 입은 아픈 마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봄날을 위해 나목으로 몸피를 줄이는 겨울나무와 같다.

    ‘한 땀 한 땀 꿰맨’ 치마폭에 숨긴 희망은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표현하는 예복이 될 것이다. 이제 시인은 꽃잎을 금박으로 수를 놓고 다림질해서 새봄의 새순처럼 차려입고 나설 정장 한 벌을 걸어둔다.

    -옥영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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