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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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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일상 번역가- 강지현(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23-12-11 19: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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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6년 그리스어로 발표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1975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여러 번역본 중 가장 널리 읽힌 이윤기 중역본(1981년)의 이 대목이 유재원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2018년)에서는 이렇게 표현된다. “대장, 그건 어렵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번역은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일이다. 번역가의 손맛에 따라 글맛이 살아나고 말맛이 달라진다. 불순물을 걷어낸 좋은 번역에선 다른 언어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번역은 책이나 영화에 투명하게 빠져들게 만든다. 번역가는 다른 언어를 오가며 문학과 독자, 영화와 관객 사이를 이어주고 채워주는 사람일지 모른다.

    ▼번역가 황석희는 책 ‘번역:황석희’에서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라고 말한다.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니까. 일상을 번역한다는 건 나와 타인의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다 보면 오역이 잦아지고 불필요한 오해가 쌓인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내 생각과 타인의 이해 사이에는 열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우리는 오늘도 이 무수한 가능성 사이에서 의역을 읽어내고 정역을 고민하고 오역을 짚어가며 나와 타인의 일상을 번역할 것이다.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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