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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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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버지의 면허증-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 기사입력 : 2024-03-03 18: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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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0일 오후 2시 30분.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통상 우리 부자의 통화는 매일 밤 9시경 군대 저녁 점호와 같은 시간대에,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날씨, 만난 사람, 식사 메뉴, 건강 등 동어반복의 지루함마저 배어 있다. 그래서 한낮의 전화는 언제나 위태롭고 불안하다.

    교통사고였다. 왕복 4차선 옆 수로에 바퀴가 빠져 버렸다. 급정지나 충돌은 없어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안도의 날숨을 내쉬는 순간 되레 더 큰 불안감이 들숨으로 빨려 들어왔다. 텅 빈 도로에서 차선을 벗어났다면 음주나 졸음이 아니면 운전 미숙밖에 없다. 반사신경이 둔해지고 시력이 약해지는, 노화로 인한 운전 능력 저하는 1945년생 우리 아버지께도 딱 들어맞는 추론이었다.

    474만7400명.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다. 여기에 2019년 333만7200명이라는 통계를 갖다 대면 계속 급증할 거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최근 큰 이슈였던 우회전 교통사고 비율을 봐도 대책이 시급하다. 2022년 기준 1만8018건 중 19.2%인 3452건이 고령운전자 사고였다. 정부는 2018년부터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도입하였고, 현재 각 지자체에서는 반납자에게 지역상품권, 교통카드 등으로 10만~30만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매년 반납 비율이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실 아버지께 이 제도를 말씀드렸다가 단박에 거절당했다. 차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매일 오전 11시경에 차로 17분 거리의 읍내로 향한다. 친구분들과 함께 점심을 드시기 위해서다.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이 식당 저 식당으로 몰려다니는 광경을 상상해보면 개구쟁이들이 뛰노는 것 못지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버지께 차가 없으면 그 일상의 에너지원을 잃는 것이다. 아들 입장은 대략난감이다. 대중교통망을 더 확충하라고 떼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 주말 관광객이 많은 도로지만 시속 70㎞인 제한 속도를 더 낮추면 좀 나을까 상상도 해 본다.

    합천호수로. 왕복 4차선 도로는 원래 좁고 꼬불꼬불한 흙길이었다. 늦잠 잔 어린 아들을 학교에 태워주던 자전거길이었고, 면소재지에 일 보러 가던 오토바이길이었고, 논에 일하러 가던 경운기길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하루 딱 두 번씩만. 이 길 위를 우리 아버지가 지나다녔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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