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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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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오래전 나의 봄맞이- 이종현 시조시인(202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 기사입력 : 2024-04-04 19: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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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흔일곱 살의 기용씨와 스물아홉 명의 식구들. 평균 연령에 대한 보편적 기대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기준에 지적장애 진단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성과 인지기능 부족으로 이들은 복지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와 다른 차별성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적이거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우리들의 바깥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사회적응과 독립적인 생활을 위한 재활서비스를 담당했었다.

    봄을 맞이해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원예 활동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원예 활동은 식물을 통하여 사회성과 심리적 혹은 신체적 적응력을 길러 정신적 회복을 향상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가 훨씬 지난 기용씨와 함께 묵정밭을 향했다.

    “선생님, 지금 쑥 뜯으러 가유.”

    “쑥을 뜯는 게 아니고 밭을 한번 들러 볼려구요. 기용씨께 묵정밭을 분양해 고추랑 가지와 호박도 심으라고….”

    “분양이 뭔 말이대유. 나는 돈 하나도 업슈.”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 묵정밭 언저리. 잡초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제초제를 뿌리고 돌을 골라내면 밭은 쓸만하겠죠.”

    “아따 선생님도 여그다 농약치면 풀이 또 왕창 생기는디. 큰 풀에 농약을 치면 잎만 죽는당께요. 그라고 뿌랑지가 살아 맨날 농약치고 또 치면 땅 속의 벌거지꺼정 죄다 죽어유.”

    셈을 다루는 시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만 짓던 기용씨의 의외의 대답이었다.

    “긍께 낫으로 풀을 베고 농약을 쳐야 뿌랑지가 죽어요. 많이 치면 벌거지가 죽응께 쪼매만 허고 뿌랑지를 뽑으면 돼유.”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노동력과 시간은 물론 돈이 많이 필요해요.”

    “선상님, 농약을 많이 치면 그것이 몸 속으로 들어가 안 좋아유. 그라고 벌거지가 죽으면 맨날 비료 뿌려야 되고 농사가 더 안돼유.”

    기용씨가 덧붙인다. “돈 많으면 뭐해유. 건강하게 살아야지.”

    장애라는 멍울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봄기운을 전해주고 싶어 계획했던 원예 활동. 생명들이 건강하게 자라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을 안겨주려 했던 내가 부끄럽기만 했다. 묵정밭에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효과성을 숫자로 검증하고 비용을 산출하던 내 모습이 유리창에 얼비치고 있었다. 단잠에 빠진 기용씨가 방문 틈새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바깥 풍경과 닮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많은 후회를 했다. 투자한 것이 얼마인지 숫자를 헤아리는 내 모습을 읽은 것이다.

    나는 편안하게 잠이 든 기용씨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서 봄을 맞이해 꽃의 향기가 아닌 또 다른 향기를 맛보았다. 돌아서면서 기용씨 방문을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봄의 길목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로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나의 삶에서 손익분기점을 찾아 달려왔음을 뉘우치는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때 맞이한 봄은 또 다른 계절이었다.

    이종현 시조시인(202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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