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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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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잃어버린 `영자`

  • 기사입력 : 2003-02-14 00:00:00
  •   

  • 소금이 그 맛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짜게 할까.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
    듯 우리 인생도 제멋에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특히 많은 사람에게 웃음
    을 선사하는 코미디언일수록 그렇다. 작년에 작고한 코미디언 황제 이주일
    씨가 만약 그 생전에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얼굴을 곱게 단장했더라면 어찌
    됐을까. 아마도 팬들은 얼굴을 돌렸을 거다.

    그의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는 말은 우리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실제 그 얼굴을 들여다보노라면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
    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마치 이주일씨가 미남이기를 선언한 것과 같
    은 큰 사건이 얼마 전에 발생했다. 바로 개그우먼으로 인기를 한 몸에 모으
    던 이영자씨가 갑자기 여자이기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60~70년대 대학가나 공단의 기숙사, 술집에는 영자의 전성시대가 있
    었다. 영자는 두 얼굴을 지녔으니 하나는 몸을 팔 정도로 예뻤고, 다른 하
    나는 억척스러웠으나 상냥했다. 어느 쪽이든 생활력은 뛰어났었다. 비록 몸
    을 파나 그렇게 번 돈으로 고시생 애인의 학비를 댔고, 또 비록 차장(車掌)
    을 하는 또순이 여공(女工)의 공순이이나 그들 입가에는 늘 여유가 감돌았
    다.

    그 무렵 `영자의 입술은 대포집의 술잔인가`하는 노래도 나돌았었다. 그
    러나 그 누구도 영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진 못했다. 어릴 적 철수와 영
    희, 그리고 바둑이가 함께 손잡고 커가듯 그 시절 대학가 하숙촌의 밤은 영
    자와 함께 저물고 있었다고나 할까.

    소설 속의 춘향이가 수절(守節)의 메시지를 이 땅에 처음 전했다면 구전
    (口傳) 속의 영자는 여권신장의 메시지를 이 땅에 처음 전했다. 영자는 돈
    을 벌고 쓸 줄도 알았으며 그러기에 남자를 거느릴 줄도 알았다. 영자는 분
    명 6·25전쟁 때의 금순이가 아니었다.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노래
    속의 금순이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굳셀 것을 아빠가, 오빠가 바랐었다.

    영자의 전성시대란 가장 영자다운 때를 말한다. 그러나 이영자씨는 영자
    이기를 포기했다. 뚱뚱한 몸집을 확 줄여 날씬하고자 했다. 그녀가 소금이
    라면 몸집은 바로 짠맛인데 짠맛을 빼버리니, 소금이 될 리가 없다. 그녀
    의 홈페이지에 들어 가 보자. 여전히 `영자의 전성시대`는 `개업` 중이었
    다. 그러나 손님은 많지 않았다. 많을 까닭이 있겠는가.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녀가 나온 개그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거기에서
    그녀는 마치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현란하게 흔들며 춤을 췄다. 가을날 칼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지듯 그녀의 뚱뚱한 몸집도 바람 속에 날리는 낙엽
    이 됐다. 저런 몸집도 낙엽처럼 떨 수 있단 말이지, 사람들은 궁금해 했고
    재미있어 했다.

    거기에서 그녀는 차장을 맡았다. 지하철이 없던 시절, 시내버스는 유일
    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차장은 주로 여자가 했는데 반드시 힘이 세야 했
    다. 그래야 배치기라 하여 승객을 배로 떠밀어 버스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
    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소리도 내질러야 했다. 당시 학생들의 인기 잡지인 `학
    원`의 유머 광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차라리 죽는게 나아요`.
    이것은 `청량리 중랑교 가요`하고 외치는 차장의 말을 빗댄 것이다. 정말이
    지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영자는 고달팠다. 그러나 굳건히 버텨줬다. 그리하
    여 일군 게 고도 성장의 코리아가 아니던가.

    영자를 잃고 있는 세태다. 모두가 멋내기, 얼굴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할 때, 이영자씨만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마저 여자이
    고 싶단다. 그녀의 우람한 율동, 그 몸집이 다시 떨리는 날이 있을까.
    /허도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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