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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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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금요 칼럼] 빛바랜 미국

  • 기사입력 : 2003-03-28 00:00:00
  •   

  • 이라크 전쟁이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속전속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당초 대학생과 초등학생 간의 싸움이라 봤지만, 갈수록 그런 조짐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부시 대통령도 이미 장기전이 예상된다고 할 정
    도다. 무엇이 미국으로 하여금 그런 고뇌를 갖게 했을까.

    네트워크의 힘이다. 위성방송과 인터넷이 전장(戰場)의 모습을 지구촌 곳
    곳에 생생하게 전하면서 그 신속하고도 공정한 보도에 세계인의 이목이 쏠
    리는 것이다. 많은 매체들 가운데 알자지라고 하는 아랍계 민영 위성방송
    이 단연 그 대표이다.

    미국은 알자지라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봐왔다. 지난 91년의 걸프전쟁
    때처럼 CNN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믿었고, 또 워싱턴 특파원으로 구성된 세
    계 유명 언론사의 500명 종군기자가 있으면 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전
    황이 미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하면서 그런 예상은 차질
    을 빚고 있다.

    미국은 자국의 미사일이 12년 전의 그때처럼 우주쇼를 하듯 바그다드의
    밤하늘을 수놓을 줄 알았다. 그들의 지상군은 오늘은 남부, 내일은 중부,
    모레는 바그다드 하는 식으로 파죽지세로 이라크를 휘몰아칠 줄 알았다. 그
    러나 전황(戰況)이 사실상 교착화되면서 종군기자는 탱크에 갇힌 신세가 됐
    고 CNN은 미국의 심리전에 이용돼 아예 거짓보도를 하는 일마저 잦아졌
    다.

    물론 나중 미군이 바그다드에 입성하면 그때는 CNN과 종군기자들이 제 세
    상을 만난 듯 각종 뉴스보드에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알자
    지라를 비롯한 다른 매체들의 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 같다. 이라크
    정부는 이미 CNN 취재기자더러 바그다드를 떠나라고 했다.

    이 CNN의 위상 추락을 미국의 전략 실패에서 찾는다면 이는 아주 근시안
    적이다. 미국은 이번 전쟁이 21세기, 즉 정보혁명기에 들어와 처음 갖는 것
    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라크에 최첨단 무기를 쏟아 부었으나, 정작 이를
    움직인 것은 과거 산업혁명기의 하드웨어적인 머리였다.

    미국이 유엔의 승인을 얻지 않고 전쟁을 일으켰고 또 단시일 내에 바그다
    드를 점령할 것으로 믿은 게 산업혁명기의 하드웨어적인 힘의 논리였다. 사
    실 과거시대에는 힘이 곧 정의로 통하기도 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
    하할 때 그런 생각이 없었더라면 원폭투하가 가능했겠는가 말이다.

    흔히 금세기를 정보혁명기라 부르며 이 시대를 이끄는 것은 특권이 아니
    라 분권이며, 정보독점이 아니라 정보공유이며, 획일화가 아닌 다원화라고
    한다. 이런 제(諸) 성질을 집약하는 게 컴퓨터다. 컴퓨터는 분명 하드웨어
    이나 이를 움직이는 것은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이지 않던가.

    부시는 정보혁명기의 전쟁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런 모델을 제시하는데 실
    패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서도 그는 마치 쥐를 잡으려다 독마
    저 깨고 있다. 그는 빅 라덴이나 후세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아프가니스탄
    을 온통 벌집으로 만들어도 좋고, 이라크 국민이야 수없이 죽어도 좋다는
    것인가.

    미국은 지금이 정보혁명기라는, 지구촌의 그런 시계마저도 돌려놓을 수
    는 없다. 인터넷을 타고 세계 곳곳으로 번져가는 있는 반전평화운동도 그
    본질은 반미에 있음이 아니라, 이에 앞서서 금세기 인류가 누리고 지녀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로 정립하기 위한 몸부림임을 미국은 깨달아야 한다.

    CNN의 위상 추락이 미국의 위상 추락을 예고하는 것일까. 미국이 이라크
    에 이긴다고 해도 미국이 생각해 온 `이라크 전후(戰後) 방식`이 그대로 실
    현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켰고, 또 이기
    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 전후 질서까지도 미국이 좌지우지하기란 어려
    울 것 같다.

    왜일까. 우리 한국만 하더라도 바그다드 현지에서 뉴스를 전하는 이들은
    KBS MBC 등의 정규 기자가 아니다. 뜻밖에도 시민단체들이 보낸 반전평화팀
    임은 무엇을 뜻하는가. 특권이 무너지고 있음이다. 세계 유일 강국인 미국
    도, 전황 보도의 황제인 CNN도 다원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계인의 도전
    앞에 흔들리는 것이다. /허도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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