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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서귀포식' 부실 도시락

  • 기사입력 : 2005-01-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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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점호(객원논설위원·경남문화연구원장)


    의·식·주는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먹고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그런데 21세기 정보화 초문명 시대에 아프리카의 일도 아닌 우리 주변에 아직도 점심을 싸 갈 수 없는 결식아동이 많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보릿고개가 없어진지 30년 이상 지났고 올림픽에다 월드컵대회를 치러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까지 가입한 눈부신 경제성장 속에서 아직도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다.


    요 며칠동안. 한심하고 애처로운 식단으로 짜여진 ‘서귀포식 부실 도시락’ 고발사진을 접한 국민들은. 특히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입맛을 싹 잃었을 것이다.

    빵 1개에 단무지 2∼3점. 게맛살 4조각. 삶은 메추리알 5개. 튀김 2개. 성장기에 있는 아동들이 먹는 음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질과 양이 극히 부실한 이 도시락의 영상이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식을 우리 어른들이 겨울방학중 결식아동에게 제공했다는 것은 아동에게 격려는커녕 오히려 힘을 빼앗는 일이다. 해당 공무원과 정부의 무책임을 질타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부지기수다. 가난해서뿐 아니라 부모가 밥벌이를 하느라 제때 먹일 수 없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못 먹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도 많다. 결식아동 중에는 중소기업의 부도사태로 부모가 경제력을 상실하거나 잠적하는 경우. 부모의 이혼 등 가족해체 현상으로 결식아동이 증가하는 등 그 요인도 다양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얼 위해 이토록 분주히 살아가는가. 무관심으로 인한 굶주림은 나눔이 사라진 이기적 무관심의 결과이다.


    우리나라 결식아동의 수는 전국적으로 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은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성장기에 필요한 영양섭취가 부족하여 질병에 노출되기도 하고 심리·정서적으로 불안해 하며 학습부진현상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실 도시락으로 결식아동들이 겪은 정서적인 상처는 또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못살던 시절에도 ‘밥 굶는 것이 제일 섧다’고 했다. 밥 굶는 것은 단지 ‘배고픔’이 아니라 ‘설움’이 란 뜻이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빈곤에 허덕이는 아이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 버려지기도 하는데. 한쪽에서는 굶주림과 새우잠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못 먹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원망하게 되고 그래서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고 한다. 더 큰 사회문제의 예방차원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어른들의 의무로. 그리고 이웃과 나누는 기쁨을 위해서도 우리는 고통받는 이웃들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IMF를 극복하고. 외환보유고도 2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면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허기에 찬 배를 움켜쥐고 있다. 경제회복의 환호성도 그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기간에 경제난을 극복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가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따뜻한 나라일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호황을 누려도 그늘 속 사람들이 신음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하루 끼니 걱정으로 긴 겨울방학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결식아동들은 요즘 “하루 빨리 방학이 끝났으면” 하는 한결같은 바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학기 중에는 학교 급식을 통해 점심을 해결할 수 있지만 방학중에는 하루 한 사람당 2천500원에 불과한 급식비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결식 어린이의 빈곤상황을 시급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가난 구제의 일차 책임은 국가에게 있고. 빈곤층은 우리 사회가 껴안아야 한다. 특히 한창 꿈을 키워가야 할 나이에 배고픔에 굶주려 건강과 희망 모두를 잃어간다면 이보다 더한 슬픔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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