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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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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함양 고운 최치원 산책길

경남의 길을 걷다 (38) 함양 고운 최치원 산책길
1000년 전 고운 선생이 밟았던 그 길
눈부시도록 고운 가을이 앉았네

  • 기사입력 : 2011-11-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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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상림숲이 초록에서 가을색 분위기로 단장하고 있다.

    소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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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팀이 함양 대병저수지변 도로를 걷고 있다.



    가을 길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숙연해진다. 봄과 같은 활기도, 여름과 같은 격정도, 겨울과 같은 을씨년스러움도 없다. 가을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곳, 1000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함양 상림숲을 끼고 도는 ‘고운 최치원 산책길’을 찾았다. 전 구간은 5㎞(상림 1.6㎞ 포함) 정도로 비교적 걷기에 편하고 볼거리도 많다. 시작은 상림숲에서도 가능하지만 함양문화회관과 향토역사박물관 뒤편에서 필봉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다. 좋은 길을 뒤로 미루고 처음 힘있을 때 산을 오르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길을 걸으면서 먼발치에서 상림을 감상한 이후에 숲속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는 것보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상림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함양문화회관 뒤편 길은 오솔길이라 지나치기 쉬운데, 함양여중 후문 쪽 늘봄가든 정문 옆으로 나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숲길이 나오고 필봉산(문필봉) 정상에 당도한다. 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은 233m 정도인데도 함양읍내가 훤히 보인다. 정상에는 제법 넓게 공원을 조성해두고 있는데 군민들이 자주 찾아 운동시설도 있고, 주변 산책로도 있다.

    표지판을 따라 대병저수지 쪽으로 포장하지 않은 산길을 500m쯤 가면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함양 향교가 있는 원교마을, 그리고 왼쪽은 대병저수지 쪽 길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앞에 범상치 않은 묘가 나타났다. 신도비와 상석을 비롯한 묘석들이 잘 배치돼 있다. ‘세종왕자한남군신도비’라는 비문을 보고서야 세종임금의 아들 묘임을 알았다. 한남군은 세종대왕의 12번째 아들(혜빈 양씨의 소생)로 단종 복위에 연루돼 휴천면 남효리 새우섬에 유배됐다가 4년 만에 사망했다. 한참 후인 1557년(명종 12년)에 ‘한남군 정도공 휘어지묘’를 만들고 도 기념물 165호로 지정 관리해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한남군의 지조와 절개를 기려 마을 이름을 한남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1429년에 태어나 1459년에 사망했으니, 왕자로 태어나 고작 30년을 살다 갔다. 정비석 선생이 ‘산정무한’에서 마의태자묘를 보고 쓴 한 구절이 생각났다. “고작 70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의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 발길은 암연히 수수롭다.”

    대병저수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기서 1.12㎞는 청춘길이 이어진다. 길 속의 길인 셈인데, 이 길을 걸으면 다시 청춘이 된다고 한다. 좁은 아스팔트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을을 느낀다. 감을 다 수확하고 까치밥 몇 개가 남아 있는 감나무와, 통통하게 속이 찬 배추밭 하며,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이 평화롭다.

    길을 놓치기 쉬운데 필봉산에서 650m 가다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필봉산 능선을 따라 걷게 된다. 함양읍내가 한눈에 훤히 보이고 왼쪽으로는 상림의 온전한 숲이, 오른쪽에는 백암산과 동서고속도로가 나 있다. 2년 전 큰 산불이 나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 ‘고지전’에서 전쟁 속 폐허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능선길은 소나무 숲길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지형 때문에 사색을 하며 걷는 데 손색이 없다. 한참을 가다 보면 오른쪽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큰 산이 대봉산이다. 대봉산은 과거 괘관산이라고 했으나 큰 인물이 날 수 있도록 산이름을 고쳤다. 대봉산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백운산의 동쪽 지맥선상으로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옛날 빨치산의 활동거점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산길 끝지점에 대병저수지가 나오고 조금만 걸으면 조선의 유학자 뇌계 유호인 유적지가 나온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상림(대관림)이다.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을 당시 이 숲을 대관림이라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중간 부분이 파괴돼 지금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다. 하림 구간은 취락의 형성으로 훼손돼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그 흔적만 남아 있고 옛날 그대로의 숲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상림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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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림숲 입구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함양 필봉산 산불감시초소 능선에서 만난 가을. 청명한 하늘의 양떼구름 아래로 향기 그윽한 산구절초가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한다.


    연암 박지원이 처음 설치해 함양의 상징이 된 물레방아.



    역사인물공원.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한몸이 된 연리목.



    필봉산 정상에서 산불감시초소 사이에 위치한 세종대왕의 12번째 아들 한남군의 묘역.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함양읍 운림리, 대덕리 1.6㎞에 걸쳐 있고, 폭은 80~200m로 면적이 21㏊나 된다.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 선생이 이곳 천령군(함양의 옛 이름)의 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의 하나다.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 잡은 호안림이며 당시에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흘러 홍수의 피해가 심하자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다.

    상림은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 절경을 맛볼 수 있지만 특히 가을의 단풍과 낙옆길은 일품이다. 단풍이 좋은 이유는 노린재 개죽나무 개서어나무 갈참나무 느릅나무 등 120여 종의 나무 2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대부분 활엽수이기 때문이다. 또 숲속 오솔길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많이 찾는데 연인들을 위한 특별한 얘깃거리도 있다.

    상림에는 사랑나무라고 하는 연리목이 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것을 연리목이라 하는데 부부간의 금실이나 남녀간의 애정이 깊음을 비유한다. 여기에 있는 연리목은 수종이 서로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 전체가 결합돼 있어 더욱 상스러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남녀간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소원성취한다고 전해지는 희귀목이다.

    상림이 시작되는 곳에 물레방아가 탐방팀을 반긴다. 이곳 함양에서는 산삼축제와 물레방아축제가 열린다. 산삼이 많이 나는 고장이고, 물레방아가 처음 만들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실학자 연암 박지원 선생이 열하일기를 통해 중국의 물레방아를 처음 소개했고,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1792년) 용추계곡 입구 안심마을에 만들었다.

    단풍은 지금(이번 주말 정도)이 한창이다. 많은 활엽수들이 만들어 내는 색색의 단풍은 한 폭의 그림이다. 단풍이 지고 나면 낙엽을 밟고 걷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다.

    단풍은 등에 햇빛을 받고 구경하는 것보다, 단풍을 가운데 두고 태양을 정면에 바라보는 듯한 위치로 해야 한다. 단풍을 카메라에 담을 때도 역광으로 찍어야 한다. 햇빛에 반사된 단풍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400m만 더 걸으면 역사인물공원. 최치원 선생을 비롯해 김종직 등 이 고을 수령을 거쳐간 인물 11명의 흉상을 제작해 두고 있다. 한쪽에는 조선시대 열녀비도 있는데, 혼인 약속을 한 병든 남편이 죽자 3년상을 치르고 자결했다는 밀양박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비다. 옛날 얘기다.

    조금만 더 가면 금호미 다리가 나오는데, 고운 선생은 상림숲 조림을 마치고 숲속 어디엔가 나뭇가지에 조림하던 금호미를 걸어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왼편으로는 연꽃단지 7만여㎡를 조성해 두고 있다. 지금은 잎이 다 떨어져 볼 것이 별로 없다. 함양군은 향토식물원, 민물고기생태관, 상림수변문화공원, 대병가족휴양센터, 오토캠핑장, 수변수생군락지, 삼림욕장 등을 개발하고 있다.

    상림 한가운데에 다볕당이라는 넓은 잔디마당은 야외음악 공연 등을 한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숲으로 복원 중이다.

    고운 최치원 산책길은 말 그대로 1000년 전 선조의 숨결과 만추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부족한 점 없는 길이다.


    글= 김용대기자 사진= 김승권기자 안내= 임숙조 문화해설사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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