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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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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1) 박서영 시인이 찾은 남해 지족해협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생의 변주곡

  • 기사입력 : 2013-09-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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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지족해협 인근의 갯벌.

    지족해협
    죽방렴멸치 작업 모습

    박서영 시인



    만약, 여행에 관한 책을 쓴다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갯벌이 있는 바다에 가서 쓰면 좋겠어. 그러니까 밀물과 썰물 위에, 어느 작은 갯마을에 방 한 칸을 얻어 한 며칠 머물면서 쓰면 좋겠어. 다가오고 떠나는 것들 위에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쓰면 좋겠어. 너는 정말 이상한 생각을 가진 아내로구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엄마는 정말 이상한 엄마야. 네가 그렇게 말하고 토라지더라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처럼 나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고야 말겠어. 비록 내 손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 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읽게 될 거야. -어느 날의 메모에서



    남해 지족해협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이 메모 한 장 때문이다. 요즘 예전의 메모를 뒤적거리는 습관이 생겼다. 감상적이고 파편적인 메모들이다. 그러나 그 속엔 내가 지나쳐온 시간들이 웅크리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소금물인 것이 어느 여행자에겐 바다가 되어 펼쳐지는 곳. 남해 지족해협에 가면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생의 변주곡을 들을 수 있다. 밀려오고 쓸려가는 물결 위에 사랑의 시간들이 길을 낸 것을 볼 수 있다. 무작정 해안을 끼고 달려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풍경들은 낯설다. 그 옛날의 풍경이 아니어서, 변해버려서 낯설기만 하다. 우리도 변해버렸지.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지만 문득 심장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어 나는 또 어딘가에 가야 한다.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가 보여주려는 것이 웃음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표정이 깊은 사람의 얼굴에서 언뜻 보게 되는 밀물과 썰물. 그의 얼굴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살다가 떠났고 외로움이라는 긴 말이 새겨졌다.



    삼천포를 지날 때 해안 길을 달리다가 포도밭을 만났다. 종이를 뒤집어쓴 포도송이들이 탐스럽다. 잠시 포도 파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어본다. 지족해협이 아직 멀었느냐고 물었더니 30분만 더 가면 된단다. 포도 한 박스를 사서 차에 넣어두고,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마치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것 같다. 노을이 오고 저녁이 오고 밤이 온다면 비로소 불이 켜지겠지. 그 불빛처럼 내가 많이 따뜻하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물결은 고요한데 출렁거리는 기분이 묘하다. 바다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세상의 어지러움이 적은 사람일까. 너무 많이 어지러워서 차라리 흐르는 물결 위에 집을 지은 것일까. 남해로 가는 길엔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어디든 기어들어가 잠시 앉아 있고 싶어지는 길들이 구석구석 눈에 밟힌다. 삼천포를 지나 대교를 건너 조금만 가면 지족해협이다. 그곳에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곁눈질하지 않고 닿은 지족해협엔 바닷물이 들어차 있다. 물때가 ‘조금’이란다.

    죽방렴 어장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직접 조업과정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구에 열쇠가 걸려 있다.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데 어장 주인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죽방렴에 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남해 죽방렴은 500년 이상 이어온 우리 선조의 지혜가 엿보이는 원시어업 방식이다. 바다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점점 좁혀 대나무로 만든 어살에 물고기를 가두는 방식이다. 죽방렴은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적당한데 지족해협이 그에 해당한다. 이 어획방식은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하여 2010년 국가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죽방렴은 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이 세며 수심이 얕은 물목에 설치하기 좋다. 그래서 물살이 센 지족해협의 죽방렴멸치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김홍도의 ‘남해 죽방렴 풍경’이라는 그림을 보면 세 척의 배에 어살을 대고 사내 둘이 고기를 퍼 담고 있는 풍경이 나온다. 은빛으로 빛나는 멸치떼가 그물 가득 걸려 올라오는 죽방렴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바다를 끼고 조금 더 가보니 갯벌이 펼쳐져 있다. 바다와 갯벌을 한꺼번에 보게 되다니 행운이다. 갯벌이 드러날 때 나는 가장 원초적인 살을 본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갯벌이 내놓는 맨살은 그것이 마치 우리의 본질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하다. 순하고 착한 인간의 마음. 그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의 움직임들. 꼬물꼬물, 꾸물꾸물, 바들바들, 부들부들, 뽀글뽀글, 뿌글뿌글, 귀를 갖다 대면 갯벌의 생명들이 살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낮게 웅크리고 앉아 검게 번져가는 펄을 만져본다. 부드럽다. 물컹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다. 그 느낌의 깊이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키다가 문득 순하고 착한 사람의 웃음 때문에 마음을 탁, 내려놓아 버릴 때가 있다. 그런 미소를 짓는, 웃는 모습이 좋은 사람의 주름살 같다. 그런 사람 앞에서 내 자존심 따위가 무슨 소용 있을까. 나는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바다를 보면 갯벌이 그리워지고, 갯벌일 때는 바다가 그리워질 거다. 어디쯤 헤어지고 있나. 어디쯤 멀어지고 있나. 처음과 끝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누군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도대체 그 처음은 어디란 말일까. 사람들은 달과 태양의 미묘한 자장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살아간다.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말자. 그건 서로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이다.



    이 바다는 어느 날 잠시 여행 왔다가 가버린 나를 기억해 줄까. 그리고 나는 어느 날 잠시 나에게 여행 왔다가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잠시 기대는 건 여행 중에 농담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갑갑한 현실을 떠나 함께 웃으며 나누었던 농담들. 그 농담 안에는 좋아한다는 말도 들어 있다. 밀물과 썰물, 갯벌과 바다가 서로 얼굴을 만진다. 스쳐간다. 기억해줄까. 서로에 대해서. 갯벌에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곧 저녁이 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는 저녁이 견딜 만한 저녁은 아니더라. 내가 당신에게 웃어주었다면 그건 잠시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을 보여준 것일 뿐. 심장 깊숙이 누군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몰려온다. 오늘의 동행이여. 내게 말해 봐요. 갯벌 위에 바닷물이 밀려오면 속이 보이지 않아 괴롭다고 자꾸 울지 말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냥 고백해 봐요. 바다가 되면 바다를 보고 갯벌이 되면 갯벌을 보면 돼요. 우린 처음부터 함께 떠난 게 아니라 여기에서 만났으니까. 이곳에서의 추억은 이곳에 남겨두면 될 텐데. 오늘의 동행은 자꾸 웃다가 자꾸 운다. 바다와 갯벌을, 달과 태양을 내게 다 보여줄 셈인가. 속을 다 풀어헤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 비워버리고 깨끗해지겠다는 뜻인가.

    사랑은 세찬 물살을 헤엄쳐 와 스스로 죽방렴어장에 갇혀버리는 물고기 같다. 스스로 누군가의 가슴에 헤엄쳐 들어가서 갇혀버리는 것이다. 그가 아무리 놓아준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다. 나는 갯벌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렇다. 곧 밤이 올 것이다. 물결은 저 먼 곳에서 이 검은 진흙의 가슴으로 밀려오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내 가슴에 맑고 따뜻한 물이 찰랑대면 누군가 와서 한 번 들여다보라. 몇 마디 말을 걸고 손을 넣어 봐도 좋다. 그때 내가 외면한다면 견딜 수 없는 시간인 거고, 내가 웃는다면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지나는 중일 테다. 그때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여행하는 이상한 기분을 느낄 테니, 잠시 행복해져도 좋겠다. 달이 떴다. 갯벌 위에 비치는 달빛은 신비롭다. 달빛이 갯벌을 밀며 다가오는 느낌이다. 심장에 담아갈 수도, 눈에 넣어갈 수도,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는 저 우주의 풍경과 한 며칠 살고 싶다.

    글·사진= 박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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