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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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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작은 소리는 듣고 큰 소리는 귀를 막아라- 이병문(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3-09-1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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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에 한 건꼴로 제보 전화를 받는다. 최근 석 달간 받은 전화를 모두 합하면 100건은 됨직하다. 독자 제보에 웃고 우는 그래서 ‘전화에 갇혀 사는’ 셈이다. 실명이든 익명이든 연령, 성, 계층, 지역이 모두 제각각이다. 요구는 백화점식이고 목소리는 크다. “벌이 집에 날아들었으니 119를 불러 달라, 집 근처 음식물쓰레기가 분리되지 않아 악취가 난다, 윗집 소음, 공사장 먼저 등….”

    크게 보면 소수와 다수, 즉 개인 민원과 사회적 민원으로 나눌 수 있다. 합법과 불법, 또는 그 경계에 있는 사안으로도 분류가 가능하다.

    전화를 받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첫째, 80% 이상이 개인적인 요구로 짐작된다. 일회성이거나 딱하긴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이 절반 이상이다. 근데 하나같이 세상에서 자기 일이 가장 소중하고 자기 주장이 옳다고 말한다. 극단적 이기주의에 놀라면서도 나 자신조차 별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법적 테두리 안에 있거나 법의 경계, 법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일도 들추면 오십보백보다. 법의 울타리에 있는 것은 상당수가 법적 분쟁 중이거나 소송을 제기한 경우,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제보는 심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사가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주눅 든다. 거꾸로 법의 경계에 있는 사안은 취재에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흔한 예가 의료사고로 한 달에 한 건꼴로 전화선을 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지지만 입증부터 쉽지 않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하는 만큼 절반은 수첩 속에 갇힌다.

    둘째, 자기 주장을 펴는 ‘똑똑한’ 독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뒤에 숨겨진 ‘지나친’ 이기심과 ‘조금’의 바보스러움이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지 않은지, 혹 자신의 권리를 언론사 제보를 통해 해결하려는 이기심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다는 생각에 이해는 되지만 영악함이라는 생각이 들 땐 헛웃음마저 나온다.

    셋째, 지극히 사소한 개인의 문제엔 분노하면서 사회·정치적으로 얽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제보가 상대적으로 적다. 내 집 앞 쓰레기나 소음은 좀체 못 참으면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따지는 이를 만나긴 쉽지 않다. 관행적으로 돌아가는 일이거나 내 삶에 피해가 없으면 구조적인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게 수월하고 모험을 해봤자 이득이 생기지 않으니 눈 한 번 질끈 감고 참고 넘어가는 계산도 깔린 것 같다.

    사소한 문제에 시정을 요구하는 당당한 목소리를 들을 때면 혹 이 같은 셈법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익명성을 통한 자기 이익 관철 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이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모두 ‘생각 없음’을 반성했으면 한다.

    모르고는 신문사에 전화할 수 없다. 아니까 제보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해서도 눈을 감지 말고 내 일처럼 달려들자. 그래야 한 걸음씩 나아간다. 사소한 것도 좋지만 구조적인 것에 대해서도 좀 더 똑똑해지려고 노력하자.

    스포츠선수나 연예인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꿰는 것이 미덕이지만,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아는 척하면 금세 잘난 체하느냐고 핀잔하거나 순수성까지 의심하면서 소위 ‘꾼’으로 모는 못된(?) 행동도 그만두자.

    개인이 몰랐다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거나 봐주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에 눈을 감는 것, 참으라고 종용하는 것은 법보다 더 큰 양심을 숨기는 것이며 가위눌리기 십상이다.

    한가위엔 내가 아닌 우리를, 또는 세상을 위해 짬을 내고 ‘몸부조’하는 이웃에게 곁을 내주고 박수를 보내길 기대한다. 모두 ‘지나친’ 이기심과 ‘조금’의 바보스러움에서 반걸음이라도 물러섰으면 한다.

    이병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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