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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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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배우라는 직업은…- 김은민(한국연극협회 밀양시지부장·극단 메들리 대표)

  • 기사입력 : 2013-12-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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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을 앞두고 있는 배우들은 아플 수도 없습니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연기하기 위해서 아파서도 안 되고 사고가 나서도 안 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 됩니다.

    가끔 공연을 앞두고 차를 타고 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그럼 셋업은 어떻게 하지? 나 없이 공연하는 데 별 무리가 없을까?’ 물론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연을 앞두고는 항상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발표를 앞둔 어린 배우(?)들에게 ‘너희는 배우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는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사고가 나서도 안 된다.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아픈 사람은 집에 가서 손발 깨끗이 씻고 몸 관리를 해라.’ 아파도 긴장하고 참고 무대에 오릅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모두가 무너집니다. 안 아프던 몸 여기저기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긴장감에서 오는 피로와 인내하며 견뎌 냈던 것들과의 싸움의 결과죠.

    또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겨도 곤란합니다. 당장 달려갈 수도 없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공연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가야 하는 상황과 마주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약속이고 관객과의 약속인데 취소할 수도 없습니다. 그 무대가 단 한 번의 공연이라면 더욱더 문제가 됩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공연 날 폭설이 왔습니다. 관객과의 약속이었기에 공연장 앞의 눈을 쓸고 리허설을 하고 관객을 기다렸습니다. 아침부터 노심초사 출연자들이 못 오지나 않을까 관객들이 이 눈 속에 와줄까? 출연자들은 걸어오기도 하고 스노타이어를 장착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관객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폭설이 와도, 폭우가 와도 관객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는 것이 배우입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슬퍼도 맘대로 슬퍼할 수 없고 아파도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참 슬픈 사람들입니다. 이 배우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관객을 만날 수 있고 관객이 보내준 따뜻한 박수가 그들의 슬픔도 힘듦도 모두 날려버릴 엔돌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점점 더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자기 옆에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박수를 쳐 주십시오.

    김은민 한국연극협회 밀양시지부장·극단 메들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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